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올해도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빛과 구원의 희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합니다. 


그 기쁨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리 St. John's Episcopal Church는 다양한 예배를 통해서 우리 이웃들과 함께 성탄예배를 드립니다.



24일 성탄이브 예배: 오후 3시: 본당과 강당에서 성탄행사

 

                           오후5시: 본당과 강당에서 성탄이브 예배


                           밤 7:30:  본당, 한미 연합성탄이브 대미사


                           밤 10시  : 본당 성탄 대미사


25일 성탄절 예배     오전10시: 본당 성탄절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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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루가 10:25-37)


착한 사마리아 사람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읍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27     "'2)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하였읍니다." 이 대답에

28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31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2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35    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 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36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 율법교사가 예수를 찾아 그 길을 묻습니다. 그는 율법을 정확하게 알고, 하느님게서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목적을 잘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서 사랑학고 그와같은 마음으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사랑의 삶이 우리에게 영생의 기쁨을 줄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모든 것은 사라진다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에 율법교사는 그러면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며 이웃에 대한 정의를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게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이웃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여 줍니다. 이웃이란 남의 고난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 일처럼 돌보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반목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이웃에서 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인은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자기의 시간과 정성과 돈을 다들여 그를 돕습니다. 여기에는 인종이나, 계급이나. 종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불쌍한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느님게서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측은지심이라 합니다. 이 말은 본래 맹자가 한 말인데 어려운 이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하느님게서는 누구든지 사람에게는 이런 측은지심의 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제물로 우리들을 위해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해 할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교사는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주님게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라는 말씀으로 그에게 답을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들 세상에는 불쌍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를 들러서 돕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 멕시코 국경에는 중미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살려다라고 도움의 손길을 내닐밀어 미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미국정부는 이들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스스로 하느님의 사람이기를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거부하는 행동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윌에게 보내 주시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려는 하느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쌍한 이들을 버리는 일은 곧 하느님을 버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버린다는 것은 죽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불행일입니다. 그래서 롱 아일랜드의 성공회 주교님은 교인들을 이끌고 

 멕시코 국경에 가서 그들을 돕울 수 있는 일을 찾아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을 통해서 미국을 정부를 회개 시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려운 형제를 행동으로 돕는 것이 곧 하느님게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하느님의 나라는 어두움의 권세를 몰아내어 결국은 승리의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갈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주위를 돌아 보십시오. 내가 돕지 않으면 안으면 안되는 그 일과 그 사람을 위해서 나를 봉헌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영생의 삶으로 축복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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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하여 일반인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그들은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모두가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기에 책 한장을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일테지만 현대인의 삶은 독서를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게으름에 빠져있는 것 같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독서량은 연평균 9.1권 미국은 77권 일본이 72권으로 나와있다. 결국 국민의 수준을 독서량으로 가늠해 볼수 밖에 없다.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보다 형편없이 독서를 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면서 슬퍼지기까지 한다. 사실 일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않는 사람도 주위에서는 쉽게 찾아 볼수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시작하였다. 수요일 이른 아침 오전 6시30분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 나와서 자신들이 읽은 책을 말하고 서로같이 읽은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나눈다. 두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모두가 자기의 진솔한 마음을 담아서 말하고 싶어한다. 사실 사회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수 없다. 모두가 살기 위해서 하는 지나가는 말들 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자기를 들여다 볼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생각없이 말하고,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들이 조금은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때 만큼은 순수해 지는것 같다. 

나는 어릴적에 톨스토이의 책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많이 생각하고 배웠다. 그래서 아직도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이 주는 영향이 그만큼 큰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내가 과거에 읽었던 좋은 책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대부분이 절판이 되어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신간 베스트셀러들을 가지고 공동독서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책들이 내용으로만 가득했는데 요즘은 내용은 가벼워지고 그림이 많고 편집상 여백이 많아진것을 본다. 아마도 독자들의 세대가 달라져서 그렇게 한듯 싶다. 어떤책들은 내용보다는 표지에 공을 드린것 같아서 아쉽다.  

종교인들 가운데는 자기종교의 경전만을 고집하고 일반 서적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러면 편협한 생각에 빠져들기 쉽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자기의 상식과 생각을 넓히고 종교적인 심성을 잘 키워야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부드러워지고 이해가 넓어진다. 아니면 나의 편협함에만 빠져있기 쉽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나눌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주 한번 만나는 독서의 동지들과 함께 한 주간이 즐거워지는건 덤으로 얻어지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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