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법을 살라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 모여왔다가



2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었고

4    또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그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았는데 가령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5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따졌다.

6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1)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마르코 7:1-8)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룰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지의 고집이 되어 문제가 될수도 있다. 구약은 하느님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부터 율법이 시작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느님을 지키고 따르는데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당시의 상황법이었기에 모세의 율법이 예수 시대에도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21세기에 적용하여 지키기에는 문제가 많다. 그래서 성서는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릴적 내가 다니던 교회는 선악과가 복숭아라고 가르치면서 복숭아는 물론 씨가 하나있는 과일은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이와 비슷한 율법의 가르침을 주며 그것이 하느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다고 주장한다. 


 율법은 두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율법을 613개라고 하지만 세부적인 것을 보면 삼천개가 넘는 율법들이 존재한다. 하느님에 대한 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법을 말하지만 사람에 대한 것은 대부분 하지 말라는 제한법이 많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삶을 규제하였고, 스스로 이것을 지키는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추구하였으나 예수는 그들을 향해 마음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라고 불렀다. 형식을 따르는 것이 사람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의 근본 목적은 막힌 담을 헐고 갇힌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기에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진리의 하느님의 찾아 늘 생각하고 역사 가운데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께서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라고 율법자들을 질책하였다. 나는 어떤 전통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가? 그것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만의 고집과 전통에 빠져서 판단하면 하느님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나를 속이는 삶에 스스로 빠져들수 있다. 그러면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바리사이인들이 결국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게 된다. 


헛된 사람의 전통과 율법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면 안된다. 사람의 편리함을 위하여 하느님의 존재이신 사랑의 법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겸손한 인간의 태도이다. 


주님은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한다고"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고집을 가지고 하느님을 괴롭혔는지 구약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변화할 줄을 모른다. 심지어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중심적으로만 해석하고 문자주의에 빠져서 그것만을 주장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랑의 율법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들을 때 비로서 우리에게 진리가 깨달아지고 세상의 평화를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 삶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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