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명을 살아라 (요한 13:31-35)

 

여러분이 교회에 오면 먼저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자로 왔습니다. 그날의 성경말씀도 보고 정성으로 주님을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찾는다면 무엇인가? 사랑이 아닐까요? 어느 신학자는말합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바우로 성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수 있는 가장 조건은 사랑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이 믿음은 강조하면서도  사랑은 하지 않는 같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핵심이 빠지는겁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라는 말은 야훼 하느님 신앙의 근본입니다. 하느님이 기분에 따라서 변하고 화를 내신다면 인간은 벌써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는 그런 변덕스러운  하느님을 믿을수 없습니다. 변함 없으신 하느님때문에  변화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굳세게 생활하고 안녕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악한 일에 자주 빠집니다. 기회만 있으면 하느님의 법을 어기려 하고, 헛된 고집과 욕심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야고보서에서사람이 성내는 것은 하느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합니다. 화를 낼때마다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성품이 망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으신 하느님의 마음을 닮기를 간구하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의 성품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라는 사실을 무엇을 근거로 주장하는 겁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의 주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차별없이 사랑하십니다. 부족하고 죄가 있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증거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어 주신겁니다. 하느님의 목적세상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왜곡해서 하느님을 심판하고 벌하는 분으로 만들고, 신자들을 두려움에 떨며 살게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타락의 역사는 이런 하느님의 왜곡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세의 암울한 시대를 왜곡된 기독교가 이끌게 되었고 타락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어두워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613가지의 율법은 모두가 하면 안된다 그것을 하면 하느님이 징벌을 받는다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느님의 백성들이 억압을 받고 살았을까요? 신앙은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데 목적이 있지 지옥을 경험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교제할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것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법으로 하느님의 법을 가려버렸습니다. 그것이 율법이 되어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게서 제자들에게 선언하십니다.”너희에게 새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땅에 사랑이 없었던 겁니다. 미움과 증오와 심판만이 있는겁니다. 율법에서는 이웃을 몸처럼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하라고 발전된 법을 세우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연일 전쟁과 공포를 선포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법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분이 보여주신 기적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느님께서 원수나 죄인들 까지도 제한없이 사랑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unconditional love)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는데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자식이기에 사랑하는겁니다. 부모님이기에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에 안들거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미워집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이 한것 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기로 약속했으니 말씀을 따라야지요. 힘들어도 가는겁니다.

 

우리는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개인에게나 사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사랑이 없어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하느님의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알지 못합니까?

우리를 가로 막는 죄가 있으면 문제를 볼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로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은혜의 마음이 있어야,  세상의 문제를 볼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의 마음도 없이 문제 해결하고, 축복만 달라고 하는데 하느님게서 허락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이 서낭당 나무입니까?

교회가 회개없이 하느님의 은혜를 사용하면 부패와 재앙이 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을 당하면 재를 뒤집어 쓰고 울면서 회개했지만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자기만 옳다는 소리만하고 자랑만 합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에는 세상에서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게서 보여 주신 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아라 주님 만큼만 하면 족하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랑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시가 있습니까? 보여 주십시오.

예전에 어느 분이 교회를 올때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교회에 오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그런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교인이라는 사실을 주위에서 아무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서 장례를 치루는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비로서 그가 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공회 신부들이 거룩해서 가십거리가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표시를 하고 다니니까 죄를 피하게 되는겁니다.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남들이 보고 알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물들기가 쉽습니다.

당당히 말하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성공회 교인입니다.

저는 차에다 교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그러면 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제가 누구인지 알수 있습니다. 일부 미국교인들은 성공회 교회 뱃지를 옷에 달고 다닙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겁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회 교인으로서 당당하게 보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교인으로 머물러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먼저입니다. 제자로 배우고 살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에 모여서  예배하는 겁니다. 우리들이 형식적으로만 산다면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나 바리사이인들과  무엇이 다른겁니까? 그들은 항상 예수를 반대하고 하느님의 법을 알지 못하고 살았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우리 그들처럼 산다면 무슨 구원의 은혜를 얻을수 있습니까?

 

율법적으로 살았던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로 거듭나서 생활이 바귑니다. 이방인들을 차별하는 그의 윱법이 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오늘 사도행전에서 말하고 있는겁니다. 사람들 안에는 스스로 율법의 틀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안에 하느님 사랑의 법이 올바르게 세워있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갈등과 번민이 많아서 신앙의 열매를 거둘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열매요. 사랑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지난주 교구 의회에서 주교님게서 4가지를 우리 교회 공동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실천하기를 제시하셨습니다.

1, 사랑안에서 진실을 말합시다.

 2,서로 들읍시다.

3,우리의 행동이 변화하기를 약속합시다.

4,용서를 주고 받읍시다.        

공동체가 은혜롭게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하기를 결심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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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주일) 오전 11시  우리 교회 야외 장소에서 전교인과 더불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이웃초청 야외예배를 드립니다. 성공회를 알기를 원하는 분들과 성공회 예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배후에는 BBQ 잔치를 엽니다. 

 

장소는 St. John's 교회  Rose hill 옆 미로기도 장소에서 합니다. 

시간은 11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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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선대하라( 18:1-15)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인데무슨 의미일까요? 하느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도 능히 하신다는 뜻도 있지만,하느님에 대해서는 인간이 어떻다고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분이란 것입니다오늘 본문에서는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어떤 사람은 이 셋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또 어떤 사람은 셋은 천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손님이 찾아왔을 때극진히 대접하여 하느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우리는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 이야기를 들으면서한 가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그가 과연 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알고 섬겼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대접이었을까?

오늘 본문만 보아서는 아브라함이 세 사람이 하느님이 보낸 특별한 분임을 알고 섬긴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왜냐하면 그들 앞에서 아브라함이 몸을 땅에 굽혀 인사하면서자신을 소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어쨌든 그는 나그네들을 극진히 섬겼습니다.

2-3절을 보세요.  그러나 여러분이 표현만 가지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그 세 사람을 하나님의 보내신 천사들로 알아보았다고 할수 없습니다그 당시에는 손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손님을 주로 부르고자신을 종으로 칭하였기 때문입니다오늘날도 식당에서 손님에게 “Sir”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모르는 가운데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모르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섬김의 본을 보이셨다면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함으로써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친절과 섬김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그 당시에는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일반 가정에서 나그네들을 환대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통해 그 사회의 문화나 개인의 인격의 품위가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외국인또는 나그네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나그네들에게 친절하고사회적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분명합니다그러나 텃세를 부리고나그네나 외국인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이 선진국이지만 모든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아직도 유색 이민자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한국은 더 멀었습니다다문화 가정이 생기면서 그들이 차별받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이민자끼리도 겉만보고 무시하는 경향도 많습니다.

하느님의 율법 중에 고아나 과부종과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 즉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십계명 중에 하나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것도 예배를 위한 뜻도 있지만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 있습니다안식일이 없다면 계속 일만 해야 하는 종들을 하느님이 생각하신 것입니다그래서 안식일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까지도 쉬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5:12-15)

이 하느님의 율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마음과 눈은 항상 사회의 연약한 사람들고아과부나그네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섬김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한 마음이 되어 섬겼습니다.

6절을 보세요. 

만약에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고 싶어도안주인 사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안 된다고 했다면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입니다여기서 아브라함 부부가 동일한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하였다는 것이 귀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주님의 일을 할 때에부부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둘 중에 한 쪽이 마음을 닫고섬기는 것을 꺼려하면, 주의 일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둘 중에 한쪽이 선행을 격려하지 않고 막는다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선한 일주의 일을 하는 데에는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서로의 선행을 격려해야 하겠습니다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이웃을 섬기는 일에 한 마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아브라함은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습니다이스라엘 지역에서 한 낮에 가장 뜨거울 때에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런데 본문 창18:1절에 보면손님들이 찾아온 시간은 아침이나 선선한 저녁때가 아니라 ‘한 낮’이었습니다우리가 읽은 성경엔 “날이 뜨거울 때에”라고 되어 있는데영어로는“in the heat of the day” 라고 되어 있습니다아마도 95도 정도되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중동에서는 낮잠을 자거나 그늘에 앉아 쉬어야 할 시간입니다그런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환대하기란 어렵습니다냉수 한 그릇만 대접해도 잘 하는 것입니다한 여름 손님은 강도보다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대접할 때대충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대접했습니다손님들에게 발 씻을 물을 드리고그늘에 앉아 쉬라고 했습니다아주 바삐 움직였습니다.급히 사라에게 가서 빵을 구우라고 부탁하고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송아지를 한 마리 끌어다가 잡아서 하인에게 주어 요리하게 하였습니다8절에 그날 메뉴가 언급되고 있는데이 것들은 대충 차린 음식이 아니었습니다아주 잘 차린 음식이었습니다아브라함의 정성이 담긴 섬김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이웃을 섬길 때 어떤 자세가 요구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가 없이는 참된 섬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남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경제적인 손해시간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손해보지 않으려 한다면송아지를 어떻게 잡습니까닭도 잡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축복을 얻게 합니다.   

셋째로아브라함은 사람 섬기는 일을 하느님 섬기듯이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했습니다.

여러분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진정한 섬김은 사람을 섬길 때에주님 섬기듯이 하는 것입니다무슨 일을 하든 주님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행함이 있는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사람을 대접하였는데 부지 중에 천사와 하느님을 대접한 것이 된 것입니다.주님께서도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해주어라.”이것을 명심하면 모든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섬김은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고시간과 돈의 손해를 가져올 지 모르지만결과적으로 축복의 길입니다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섬겼을 때에 어떤 축복이 주어졌습니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세 사람은 하느님과 천사들의 현현이었습니다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래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이 말을 장막 문에서 듣고 웃었습니다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으니인간적으로 그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그러므로 사라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웃었습니다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냥 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었지요.

그런데  하느님은 사라에게 그 헛웃음이 참된 웃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아들을 주셨고그 이름을 ‘웃음-이삭’이라고 짓게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합니다그래서 하느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하느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고하느님의 약속만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그것이 그것이 영적인 문제이든 경제적인 문제이든 하느님의 뜻이 있고약속만 있다면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은 나이에 아들을 얻는 것은 믿을수 없는 일입니다사라가 장막에서 내년 이맘때에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웃은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사라의 그 헛웃음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가수 션과 텔런트 정혜영씨 부부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그는 Compassion이란 단체를 통해 난민이나 굶는 아이들을 일대일로 돕는 사역을 하는데그가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아이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손님 대접하기를 힘쓰고사회의 연약한 자들을 주님 섬기듯이 섬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그러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느님을 체험한 것처럼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하느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며 살 게 될 것입니다. .

오늘날은 감사하게도 가까이 있는 이웃뿐 아니라 먼 나라의 고통 받는 이들에게까지도 얼마든지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마음입니다순종입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사라로서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고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며 사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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