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au &Roast Dinner 

8월24일 (토) 저녁 6시 St. John's 교회에서는 J2A청소년의 Pilgramage 를 돕기위한 잔치를 갖습니다.

매년 열리는 행사인데 통돼지 BBQ를 비롯한 먹거리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족들이 참석하여 즐거운 식사를 나누며 우리 청소년들을 돕는 행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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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모험 (Lk 12:49-56)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매우 진지한 모험을 하는 겁니다.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없는 놀랍고 신비한 일들을 생활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영화같은 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인생에서 많은 믿음의 경험들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이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을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에 불화를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신앙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불편함이 존재합니다.

교회에 가려면 가족을 포기해야 가능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으 믿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일입니다

사실 충격이 크면 클수록 믿음은 크게 자라는 같습니다. 집안에 예수를 증거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있으면, 집안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들 자손들 대대로  믿음의 유산으로 지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은 평화와 사랑을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전혀 예상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내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려고 왔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보면 주님게서 가정을 피탄시키려고 하시는 같습니다. 여기에서불을 지르러 왔다에서, 불은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예언자 엘리아의 말을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불을 지르러왔다는 말은 세상에 하느님의 예언을 선포하러 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전하는 말씀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불을 지르는 일이 됩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곳에서는 지금까지 그것이 죄인줄 모르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불이 난것 같은 충격이 것입니다.  

예를들어 부자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느님앞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주님를 일부러 찾아옵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습니까?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싶은겁니다. 부자가 이런 생각을 하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가 가진 재산을 팔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영원한 생명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부자 청년은 전혀 생각치 못했던 답이기에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착하게  잘먹고 평안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그의 인생에 고민을 안겨준 겁니다. 여러분은 청년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장담합니다. 그는 결국 주님이 시키는대로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주님을 찾아서 이렇게 진지한 질문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기본은 사람이고인생을 헛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성서를 보시면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들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났다면, 삶의 모습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크리스챤을  성도 “SAINT” 라고 합니다.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런 성인들의 모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말이 많고 다툼이 있는것은 아직 성화가 안된 것입니다. 어느 교회마다 교인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정말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모습은 성인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마지막에는 거룩함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목표라고 합니다. 마지막에 인간이 원하는 것은 참다운 사람입니다. 사람은 내면에 살아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때 예수를 닮게됩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내가 어떻게 리폼되어야 하는지 전혀 알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닮아야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같이 리폼되어야 하고그런 사람을 크리스챤이라고 합니다.

 

12세기의 프란시스. 그는 예수를 따르기 위해 부자인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상속을 받아 사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 앞에서 속옷까지 벗어버리고 가족을 떠나 예수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일생을 삽니다. 그가 아버지를 따랐으면 그냥 프란시스로 살았겠지만, 예수를 따름으로 그는 프란시스가 되어 지금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있습니다. 한국의 명창이요 인간문화재  박동진 선생은 집안의 장손이며, 유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일생을 창으로 만들어 노래하는 가운데 예수님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집안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놀라운 일이지요.

  

오늘 복음의 말씀은 가족들이 분열한다는 것을 말하지만 사실은 헤쳐서 하느님의 믿음으로 다시 모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불은 말씀의 의미도 있지만 종말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게서는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불은 변화를 상징합니다.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군중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을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이냐,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가족을 해체하고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가족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들 가족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으로 창조되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를 생산하고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재탄생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갖지 못해서 자유와 평화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으로 희망과 용기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50명의 가족을 이루도록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보니 사람들은 거짓된 삶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너희들은 마치 죽은자의 무덤같구나라고 표현했습니다. 살아있느나 죽은자들 처럼 살더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모순되고 위선인지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그것에 순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연일 Gun violence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사회를 변화 시키려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근이 일어나서 많은 어린생명들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전쟁을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는 그것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땅의 비극은 사람이 막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할수 있습니다.우리는 할수 없다 하느님만이 하실수 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충만해지고 믿음이 생명을 얻게 되면 세상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희망을 우리들이 갖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거짓평화와 거짓 자유와 거짓 환경속에서 모두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를 알면서도 시대의 뜻은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은 위선자입니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불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왕의 분노도 무서워 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른 땅을 지나듯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 채찍으로 맞고 감옥에 갖혔고 죽음을 당하였습니다그러나 이들은 고난 가운데에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위선과 거짓으로 인정 받을 이지만, 하느님에게 인정받는 것은 오로지 믿음뿐 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산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모험을 사는 겁니다.그러나 그 모험 속에는 엄청난 신비와 기적과 희망과 하늘나라의 복된 말씀이 가득합니다.

한번만 사는 인생을 믿음,소망,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요한 가족 여러분에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이제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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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하시는 일(요16:8-15, 롬 5:1-5)

 

오늘부터는 성삼위일체 주일이라고 해서 일반주일로 지킵니다. 성공회같은 전통적인 교회들은 교회력을 사용하는데, 예수의 성탄을 시작으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 이제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성령과 함께 생활하는 기간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현실을 외면하고 영적으로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할 때  성령을 따라 생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의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말씀을 따라 살수 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늘  제자였습니다. 자녀가 부모밑에서는 성인이 되기 어렵듯이 제자들은 주님을 의지했습니다.그래서 주님게서”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제 성령으로 그들을 무장시켜서 세상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삶을 다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역할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으로 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령을 받는다고 하면 마치 사람들이 신 내림을 받듯이 몸을 떨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고 하고 병을 고친다고 하는 이상한 행동들이 많았고, 교회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경험하는 개인적인 현상이지 일반적이거나 성령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많았습니다. 마치 무당이 신내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성령체험같이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 하시는 세가지의 일에 대해서 중요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책망하시며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해서 밝혀주실것이다.” 했습니다. 세상의 잘못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가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면서 이미 시작되었고 제자들과 성령께서 그 일을 계속 하신다는 것입니다.

 

 

1, 죄에 대해서 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왜 예수를 믿지 않는것이 죄가됩니까?

예수께서 “내가하는 일은 곧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내가 하는 일을 보아서도 하느님을 믿어라” 합니다.

곧 예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같이 율법으로 묶여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의 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하느님께 대한 죄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죄가 없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살인하지 않았고 도둑질 하지 않았다. 라며 반발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렇게 나쁜일을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얼마나 믿고 살았습니까? 하느님게서 나에게 이루신 일을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예배했습니까?

요한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죄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도 믿지 않을 것이며 예숫 믿지 않는 자는 예수의 말씀과 사랑도 믿지 않습니다. 협조자 성령이 오셔서 에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임을 밝혀 줍니다.

 

2, 예수는 하느님으로 부터 의롭게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이 사랑으로  세상에 이치에 맞지 않는것을 인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잘못된 것을 깨달아 바로 잡아 주십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십니다. 정의로운 심판자로서 우리들에게 무엇이 죄가 되는지 알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게서 예수를 의롭다 하셨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믿음의 정당함과 의로움이 드러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밝혀줍니다.

하느님은 정의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정의와  하느님의 정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제자들이 지나가다 허기져서 밀을 주워먹자 그것이 안식일의 금식을 어겼다고 고발합니다. 그리고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도 주님은 안식일에 하셨습니다. 그 당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심각한  죄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들어 주셨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정의는 사람을 심판하고 죽이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정의는 사람을 살리것에 목적이 있습니다.세상과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과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한데, 성령께서 함께 해야, 그런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성령을 따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의로움이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날때, 고집을 세우면, 논쟁을 그치고 각자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

 

3,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세상의 권세자 두목들은 심판을 받은겁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나듯이 예수님의 빛이 세상의 악한 권세들을 몰아닙니다. 주님이 가는 곳마다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일어나는 곳은 이미 악한 권세가 심판을 받고 하느님의 권세가 승리하고,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일입니까? 하느님의 일은 평화와 사랑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더이상 세상의 의혹과 미움과 다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주님게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일이 하느님의 나라의 건설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주셨고 그것으로 악을 심판하고 물리치는 일에 우리들을 함께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을 때 그 능력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약속했습니다.

“그대는 하느님게서 지으신 세상을 타락시키는 악한 세력들과 모든 죄악을 물리치겠습니까?”

예, 물리치겠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악을 심판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능력을 죽이지 말고 행사하십시오. 그것은 크리스챤의 특권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성령을 잘 따르셔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혼돈과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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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요한 14:8-17)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pentacost) 예수께서 부활하신후 40일을 사람들  가운데 드러내셨고 승천하십니다.  그후 열흘후에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보내셨고,  그들은 다락방에  기도하는 가운데 신비한 하느님의 성령 체험 하게 됩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성령강림절 입니다. 여러분안에 성령이 계십니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살아계실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함으로 안심하고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떠나가시면서 그들에게는 희망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예수와 함게 살았던 상황을 살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능력도 함께 얻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이 나의 삶의 주인으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고백입니다. 고백을 하면 믿음이 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을 어떻게 할수 있는가? 물론 자기가 말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진실한 고백이 되려면 내안에서 양심이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안에서 진심으로 고백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주님게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안에 있고 안에 있는 그분께서 일을 하는 것이다예수라는 인간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도 배가 고팠고 목이말랐습니다. , 밤이면 잠잘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만 그분이 사람들 가운데 나타냈던 기적과 말씀은 인간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느님게서 예수님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하는 일이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예수그리스도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에게 어떤 능력을 주실까요?

1, 카리스마를 주십니다.

카리스마는 하느님으로 부터 부여 받은 능력 또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주십니다.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길은 성령으로 부터 카리스마를 사는 겁니다. 그러면 온갖 놀라운 경험을 하느님으로 부터 얻게 됩니다. 이것이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까? 미켈란 젤로가 바티칸 성당의 천지 창조를 완성한 주님 이것을 제가 했습니까?” 라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29년간 사제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구도 사제의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하면 펄쩍 뜁니다. 사제의 일이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할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카리스마를 주셔서 사제와 함께 하지 않으면 말씀의 깨달음과 지혜가 나올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사제의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하는 일상의 직업들을 저보고 하라고 하면 저는 못할 겁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하느님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일을 하는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성령의 인도로 살아야 합니다. 카리스마를 가지고 사는 것과 노력으로 하는 일은 과정과 결과가 다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안식을 얻을 것이다.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고난 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과 함게 하시면 성령의 은혜로 나는 가볍게 갈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주시는 카리스마의 삶입니다.

 

2, 성령은 협조자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것이다

협조자counselor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counselor가 참 중요합니다.

얼마전 부터 아이가 counsel 받고 싶다고 니고 있는데 아주 도움이 됩니다. 혼자  자기의 생각에 사로잡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Counselor의 도움을 받아서 나올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나눌수 있는 협조자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혼자 할수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릅니다. 나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들어주는 협조자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내가 말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성령은 나를 도와서 기도를 할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counselor 역할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고민의 삶으로 부터 해방이 됩니다.

 

3, 성령은 소통을 도와주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이 제자와 신도들에게 폭풍처럼 오셨는데 그들이 서로 다른 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방 언어를 말하고 알아듣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communication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소통이 안되는 겁니다. 사람간의문제는항상소통입니다.사회가   분열되고 국가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소통이 안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잘되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사람간의 소통은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이 통하면 누구하고도 소통이 가능합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그러나 경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언어는 문제가 안된답니다. 먼저 내가 그들과 함게 하겠다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세계 어느나라를 가든지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합니다.

수도원에서 지낼때 6개국 사람들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언어 문화 음식 개인취향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살아가는, 가운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각자가 주님의 마음으로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마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역활을 성령께서 주십니다. 우리 교우들은 영적인 마음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일상의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생각이 부딪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은혜로 나누게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 가운데 항상 먼저 도를 통해서 성령을 초대하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 하시기를 구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려면 먼저 성령께 저를 의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말씀이 쓰여지기를 간구하고 성령께 저의 모든것을 맡겨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작은 일이든 일이든 성령의 인도함을 간구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내가 할수 있다는 생각은 하느님 앞에서는 어리석은 고집이며 교만이요 위선이 됩니다. 내가 없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너무도 많기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시여 우리에게 오셔서 기쁨과 환희의 축제를 하느님 안에서 살게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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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John's Episcopal Church Korean Cogreation은 6월9일 All Saint Hall 입구에서 

 

한인들이 직접만든 김치를 판매하여 우리 한국 전통의 김치를 선보이고 그 수익금을 

 

한인선교자금으로 사용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김치를 좋와하고 일부는 정기적으로 

 

사다 먹는 분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번 김치세일 행사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이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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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90년 프란시스칸으로 뉴질랜드에서 생활할때 사제 서품을 Bruce Gilberd 주교로 부터 받은후  

성공회에는 수도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서과 여성 수도회가 있는데 저는 뉴질랜드의 프란시스 수도회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개방적이며 지역을 섬기는 선교를 하고 각 교회에서도 일을 합니다. 저는 오클랜드에서 

교회일과 선원선교회의 채플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형제들이 기도와 섬김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사는 것을 목표로 생활하고 있으며 남태평양의 여러 나라의 형제들이 항상 같이 생활하는 다국적 수도자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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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명을 살아라 (요한 13:31-35)

 

여러분이 교회에 오면 먼저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자로 왔습니다. 그날의 성경말씀도 보고 정성으로 주님을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찾는다면 무엇인가? 사랑이 아닐까요? 어느 신학자는말합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바우로 성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수 있는 가장 조건은 사랑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이 믿음은 강조하면서도  사랑은 하지 않는 같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핵심이 빠지는겁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라는 말은 야훼 하느님 신앙의 근본입니다. 하느님이 기분에 따라서 변하고 화를 내신다면 인간은 벌써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는 그런 변덕스러운  하느님을 믿을수 없습니다. 변함 없으신 하느님때문에  변화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굳세게 생활하고 안녕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악한 일에 자주 빠집니다. 기회만 있으면 하느님의 법을 어기려 하고, 헛된 고집과 욕심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야고보서에서사람이 성내는 것은 하느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합니다. 화를 낼때마다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성품이 망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으신 하느님의 마음을 닮기를 간구하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의 성품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라는 사실을 무엇을 근거로 주장하는 겁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의 주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차별없이 사랑하십니다. 부족하고 죄가 있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증거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어 주신겁니다. 하느님의 목적세상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왜곡해서 하느님을 심판하고 벌하는 분으로 만들고, 신자들을 두려움에 떨며 살게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타락의 역사는 이런 하느님의 왜곡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세의 암울한 시대를 왜곡된 기독교가 이끌게 되었고 타락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어두워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613가지의 율법은 모두가 하면 안된다 그것을 하면 하느님이 징벌을 받는다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느님의 백성들이 억압을 받고 살았을까요? 신앙은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데 목적이 있지 지옥을 경험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교제할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것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법으로 하느님의 법을 가려버렸습니다. 그것이 율법이 되어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게서 제자들에게 선언하십니다.”너희에게 새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땅에 사랑이 없었던 겁니다. 미움과 증오와 심판만이 있는겁니다. 율법에서는 이웃을 몸처럼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하라고 발전된 법을 세우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연일 전쟁과 공포를 선포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법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분이 보여주신 기적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느님께서 원수나 죄인들 까지도 제한없이 사랑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unconditional love)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는데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자식이기에 사랑하는겁니다. 부모님이기에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에 안들거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미워집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이 한것 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기로 약속했으니 말씀을 따라야지요. 힘들어도 가는겁니다.

 

우리는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개인에게나 사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사랑이 없어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하느님의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알지 못합니까?

우리를 가로 막는 죄가 있으면 문제를 볼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로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은혜의 마음이 있어야,  세상의 문제를 볼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의 마음도 없이 문제 해결하고, 축복만 달라고 하는데 하느님게서 허락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이 서낭당 나무입니까?

교회가 회개없이 하느님의 은혜를 사용하면 부패와 재앙이 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을 당하면 재를 뒤집어 쓰고 울면서 회개했지만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자기만 옳다는 소리만하고 자랑만 합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에는 세상에서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게서 보여 주신 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아라 주님 만큼만 하면 족하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랑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시가 있습니까? 보여 주십시오.

예전에 어느 분이 교회를 올때 일부러 먼길을 돌아서 교회에 오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그런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교인이라는 사실을 주위에서 아무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서 장례를 치루는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비로서 그가 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공회 신부들이 거룩해서 가십거리가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표시를 하고 다니니까 죄를 피하게 되는겁니다.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남들이 보고 알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물들기가 쉽습니다.

당당히 말하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성공회 교인입니다.

저는 차에다 교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그러면 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제가 누구인지 알수 있습니다. 일부 미국교인들은 성공회 교회 뱃지를 옷에 달고 다닙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겁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회 교인으로서 당당하게 보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교인으로 머물러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먼저입니다. 제자로 배우고 살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에 모여서  예배하는 겁니다. 우리들이 형식적으로만 산다면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나 바리사이인들과  무엇이 다른겁니까? 그들은 항상 예수를 반대하고 하느님의 법을 알지 못하고 살았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우리 그들처럼 산다면 무슨 구원의 은혜를 얻을수 있습니까?

 

율법적으로 살았던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로 거듭나서 생활이 바귑니다. 이방인들을 차별하는 그의 윱법이 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오늘 사도행전에서 말하고 있는겁니다. 사람들 안에는 스스로 율법의 틀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안에 하느님 사랑의 법이 올바르게 세워있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갈등과 번민이 많아서 신앙의 열매를 거둘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열매요. 사랑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지난주 교구 의회에서 주교님게서 4가지를 우리 교회 공동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실천하기를 제시하셨습니다.

1, 사랑안에서 진실을 말합시다.

 2,서로 들읍시다.

3,우리의 행동이 변화하기를 약속합시다.

4,용서를 주고 받읍시다.        

공동체가 은혜롭게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하기를 결심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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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주일) 오전 11시  우리 교회 야외 장소에서 전교인과 더불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이웃초청 야외예배를 드립니다. 성공회를 알기를 원하는 분들과 성공회 예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배후에는 BBQ 잔치를 엽니다. 

 

장소는 St. John's 교회  Rose hill 옆 미로기도 장소에서 합니다. 

시간은 11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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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선대하라( 18:1-15)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인데무슨 의미일까요? 하느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도 능히 하신다는 뜻도 있지만,하느님에 대해서는 인간이 어떻다고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분이란 것입니다오늘 본문에서는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어떤 사람은 이 셋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또 어떤 사람은 셋은 천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손님이 찾아왔을 때극진히 대접하여 하느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우리는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 이야기를 들으면서한 가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그가 과연 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알고 섬겼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대접이었을까?

오늘 본문만 보아서는 아브라함이 세 사람이 하느님이 보낸 특별한 분임을 알고 섬긴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왜냐하면 그들 앞에서 아브라함이 몸을 땅에 굽혀 인사하면서자신을 소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어쨌든 그는 나그네들을 극진히 섬겼습니다.

2-3절을 보세요.  그러나 여러분이 표현만 가지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그 세 사람을 하나님의 보내신 천사들로 알아보았다고 할수 없습니다그 당시에는 손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손님을 주로 부르고자신을 종으로 칭하였기 때문입니다오늘날도 식당에서 손님에게 “Sir”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모르는 가운데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모르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섬김의 본을 보이셨다면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함으로써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친절과 섬김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그 당시에는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일반 가정에서 나그네들을 환대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통해 그 사회의 문화나 개인의 인격의 품위가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외국인또는 나그네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나그네들에게 친절하고사회적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분명합니다그러나 텃세를 부리고나그네나 외국인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이 선진국이지만 모든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아직도 유색 이민자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한국은 더 멀었습니다다문화 가정이 생기면서 그들이 차별받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이민자끼리도 겉만보고 무시하는 경향도 많습니다.

하느님의 율법 중에 고아나 과부종과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 즉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십계명 중에 하나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것도 예배를 위한 뜻도 있지만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 있습니다안식일이 없다면 계속 일만 해야 하는 종들을 하느님이 생각하신 것입니다그래서 안식일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까지도 쉬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5:12-15)

이 하느님의 율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마음과 눈은 항상 사회의 연약한 사람들고아과부나그네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섬김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한 마음이 되어 섬겼습니다.

6절을 보세요. 

만약에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고 싶어도안주인 사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안 된다고 했다면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입니다여기서 아브라함 부부가 동일한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하였다는 것이 귀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주님의 일을 할 때에부부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입니다둘 중에 한 쪽이 마음을 닫고섬기는 것을 꺼려하면, 주의 일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둘 중에 한쪽이 선행을 격려하지 않고 막는다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선한 일주의 일을 하는 데에는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서로의 선행을 격려해야 하겠습니다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이웃을 섬기는 일에 한 마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아브라함은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습니다이스라엘 지역에서 한 낮에 가장 뜨거울 때에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런데 본문 창18:1절에 보면손님들이 찾아온 시간은 아침이나 선선한 저녁때가 아니라 ‘한 낮’이었습니다우리가 읽은 성경엔 “날이 뜨거울 때에”라고 되어 있는데영어로는“in the heat of the day” 라고 되어 있습니다아마도 95도 정도되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중동에서는 낮잠을 자거나 그늘에 앉아 쉬어야 할 시간입니다그런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환대하기란 어렵습니다냉수 한 그릇만 대접해도 잘 하는 것입니다한 여름 손님은 강도보다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대접할 때대충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대접했습니다손님들에게 발 씻을 물을 드리고그늘에 앉아 쉬라고 했습니다아주 바삐 움직였습니다.급히 사라에게 가서 빵을 구우라고 부탁하고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송아지를 한 마리 끌어다가 잡아서 하인에게 주어 요리하게 하였습니다8절에 그날 메뉴가 언급되고 있는데이 것들은 대충 차린 음식이 아니었습니다아주 잘 차린 음식이었습니다아브라함의 정성이 담긴 섬김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이웃을 섬길 때 어떤 자세가 요구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가 없이는 참된 섬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남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경제적인 손해시간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손해보지 않으려 한다면송아지를 어떻게 잡습니까닭도 잡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축복을 얻게 합니다.   

셋째로아브라함은 사람 섬기는 일을 하느님 섬기듯이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했습니다.

여러분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진정한 섬김은 사람을 섬길 때에주님 섬기듯이 하는 것입니다무슨 일을 하든 주님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행함이 있는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사람을 대접하였는데 부지 중에 천사와 하느님을 대접한 것이 된 것입니다.주님께서도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해주어라.”이것을 명심하면 모든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섬김은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고시간과 돈의 손해를 가져올 지 모르지만결과적으로 축복의 길입니다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섬겼을 때에 어떤 축복이 주어졌습니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세 사람은 하느님과 천사들의 현현이었습니다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래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이 말을 장막 문에서 듣고 웃었습니다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으니인간적으로 그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그러므로 사라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웃었습니다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냥 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었지요.

그런데  하느님은 사라에게 그 헛웃음이 참된 웃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아들을 주셨고그 이름을 ‘웃음-이삭’이라고 짓게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합니다그래서 하느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하느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고하느님의 약속만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그것이 그것이 영적인 문제이든 경제적인 문제이든 하느님의 뜻이 있고약속만 있다면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은 나이에 아들을 얻는 것은 믿을수 없는 일입니다사라가 장막에서 내년 이맘때에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웃은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사라의 그 헛웃음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가수 션과 텔런트 정혜영씨 부부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그는 Compassion이란 단체를 통해 난민이나 굶는 아이들을 일대일로 돕는 사역을 하는데그가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아이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손님 대접하기를 힘쓰고사회의 연약한 자들을 주님 섬기듯이 섬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그러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느님을 체험한 것처럼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하느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며 살 게 될 것입니다. .

오늘날은 감사하게도 가까이 있는 이웃뿐 아니라 먼 나라의 고통 받는 이들에게까지도 얼마든지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마음입니다순종입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사라로서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고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며 사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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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서 기다려라 (마가 13:24-37)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몇년전에 대한성공회 교회진단을 하였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0년안에 교회가 문을 닫는다.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고 지금도 그것에 대한 불안함이 일부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가운데 그래 교회가 문을 닫으면 주님의 나라가 오시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만 있으면 되는 거야 교회는 영원할 필요가 없어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일전 한국의 인천에 작은교회와 소망교회가 건물을 같이 나누어 쓰는 이야기를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면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위해 비우십시오. 그래야  주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오셔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대림절(advent)에 대한 설명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기다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열 처녀의 비유: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구원의 때와 손길을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주제도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한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고난 가운데서 지내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다림으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결과 얻어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됩니다.

창세기 49:18에서 야곱이 “야훼여 나는 당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방주에서 나가길, 다윗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욥이 하나님의 회복의 때를)

영성의 깊이나 믿음의 깊이는 기다림을 잘하는데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시간에 맞추고 나의 계획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맞추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저는 기다리는 것을 잘 못했습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누구와 시간 약속을 해서 10분이 넘으면 화를 못참습니다. 정확한 시간에 모든 일을 해야만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것이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살면 스스로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런데 사목을 해 보니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 내가 지는 수 밖에는 없지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하니까 이해와 관계가 좀 더 넓어지고 여유로와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먼저 내 스스로가 편안해 졌습니다. 이것이 기다림으로 얻어진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요구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기다려서 받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기다려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모습을 보고도 기다려 주시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년을 하루같이 보시며 참고 심판의 날을 참고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지극하신 마음을 닮아 은혜로운 기다림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1,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25:5“당신만이 나를 구해주실 하나님이시오. 나 당신의 진리 따라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날마다 당신의 도움만을 기다립니다.

신앙의 기본은 주님의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따르고 내 뜻을 따르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곧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무엇입니까? 117편“하시는 일은 정의와 진, 그 모든 법은 진실, 그것이니 영원히 흔들리지 않도록 진실하고 올바르게 제정되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주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셔서 세상의 불의와 거짓과 혼란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편에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25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합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왕입니다. 그는 똑똑하고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과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고 고백하고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 손들고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까? 겸손히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도움심을 항상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까?

2, 8:24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시오실 주님을 2,000년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참고 기다림의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내 가족을 구원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 교회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모든 일에 우리는 참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겨드리는 일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국통계청에 의하면 2006년도 자살자가 10,688 하루에 평균 2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항상 세계 1위입니다. 서울대 교수가 분석을 했는데 세상변화 속에서 참지 못하고 절망함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성질이 급해서 죽는 것입니다. (밴댕이라는 생선이 있습니다. 물에서 건지면 죽습니다.) 이렇게 사람도  참고 기다리지 못하면 쉽게 포기하고 죽게 됩니다. 희망의 결과를 참고 기다려야합니다.(열심당원 가롯유다의 자살 그는 주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즉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오는데 그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릴 것이라.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계획이나 시간 안에서 이루지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의 일과 신앙적인 부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믿음으로 참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순종하고 맡길 때 이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렇게 참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3,이사야 25:9절을 읽음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이 임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죽어서 천당을 가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서 그 분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경영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현실적인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축복된 인생을 살고, 누리고,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마디로 구원을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심”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안되요 전문가가 도와주면 참 쉽게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도와 주는 것이 참 유용하고 삶에서 도움이 됩니다. )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구원을 얻은 자는 하나님게서 직접 도와 주십니다. 비즈니스를 도와 주시고, 건강을 도와주시고, 가정을 도와주시고, 구체적인 일들을 도와주십니다.

11장에서 믿음의 선조들이 얼마나 기다림 속에 하나님과 함께 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제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성서적인 기다림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의 문제를 놓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참고 , 기다려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우리들, 우리 공동체, 우리 민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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