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존재론(마태5:13-20)

용서라는  말은  종교적인 언어만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풀어야 중요한 관제입니다. 그런데   교인은 당연히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욕을 먹습니다.   또한 교인들은 착한일만 해야 한다고 하고 비난이나 저항을 안하고 순종해야 된다고도 합니다. 이런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존재일까?  각자의 취향일 있지만  이렇게 규정짖는것이 맞는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범위에서 규정지어져야 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존재와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하십니다. 삶에서 필요한 것이 많지만 두가지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이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말씀을 하는겁니다.

1, 소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함께 읽는다)

우리는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지만,  유대인 지역은  석탄처럼 소금을 산에서 캐는 암염을  먹습니다. 그래서 유대땅에는 소금이 돌처럼 굴러다닙니다. 집에서 암염을 사용하다가 떨어뜨리면 이것이 굴러 다니면서 사람들의 발에 차이고 밟히는 상황이 생기는겁니다. 소금이지만 어떤것은 음식에 사용되지만  땅바닥떨어지면 돌처럼 보입니다. 돌처럼  무시당하는겁니다. 소금 그릇에 담겨 있지 않으면 그냥 돌처럼 보입니다. 존재가 없는겁니다.

사람으로서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 무시당하는겁니다. 이것 때문에 살인도 일어납니다.  부부 사이에 무시하면 살수 없습니다.  멸시를 당하게 되면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자기  역할을 못하면 무시 당합니다. 그러면 살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존재감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죽은 겁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면서  내가 어떤 생각과 행위를 통해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야  내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가치를 사는 것인데 세상 사람과 전혀 구별이 없다면 회의가 오게 되는 겁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가? 내가 교회를 다니는가?

그래서 우리는 입으로 몸으로 하느님을 표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맛이 나는겁니다. 우리는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로 인하여 세상이 맛이 나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맛이 점점 떨어져 간다면  무시당하고 발로 차이게 되는겁니다. 이런 수모가 어디있어요? 정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과일이 맛이 안나면 먹지 않고 버린다)

 사람도 맛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밥맛이 없다고 해요. 어떤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은 밥맛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누가 좋은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누군가 밥맛을 내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밥맛나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신명을 불러 일으킵니다. 병자를 일어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어둠에 갖힌 자를 가운데 세웁니다.  그래서 잔치가 벌어진것이지요. 주님께서 맛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 맛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정말 예수처럼 살면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맛을 내며 살고 있는지요? 생각해 봅시다.

2,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16절을 함게)

빛이 하는 중요한  역할은 보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빛이 나타나면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촟불을 들고 노래합니다.”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 빛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무엇이든 자기를 녹여야 안에서  빛이 나옵니다. 나무 ,배터리, 어떤 물질이 죽어야 그곳에서 빛이 나옵니다.  빛이 되려면 나를 태워야 합니다. 안그러면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Sacrifice  빛은 스스로 빛이 되지 않고 다른 존재를 비추어야 비로서 빛이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보게되는 것은 다른 것을 통해서 나타남으로 비로서 보는겁니다.

 

소금과 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무언가를 위해서 존재한다는겁니다.

이것은 우분투 정신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반투어에서  평화사상을 담고 있는 아프리카 언어입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존재한다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생명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 우분투 정신입니다. 우리에게서 내가 상대방을 위해 빛을 비추지 않으면 나는  생명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를 살리기 위해 사는 것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빛이 되어 상대를 비추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인간은 그래야 하는데 사실을 잃어 버리고 살기에, 예수께서 오셔서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럼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라목적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내가 녹아서 맛을 낼때 내가  희생하여 빛을 밝힐 사람들은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는겁니다. 여러분 어머니의 모성애에서 하느님을 보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헌신에서 하느닙의 사랑을 느끼지 않습니까?  모두에게서 우리는 거룩한 하느님을 만나는 겁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았다면 세상은 하느님을 몰랐을 겁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보이지 않았어요. 하느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것입니다. 살아서 그리스도가 되지 않았어요, 죽어서 그리스도가 되신겁니다. 그를 보고 하느님이 사랑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것입니다. 구약시대까지만해도 사람들은 하느님을 무서운 심판자로만 알았는데 비로서 하느님이 구원자의 사랑을 가지신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어떤 사건을 통해서 압니다.

레아는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한번도 안아주지도 않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는데 한가지 사건으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고 있어요.한번 어플때 등에 업고 정신없이 달려간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안겁니다.

소금과 빛은 그냥 존재로서 자기의  자리에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사용하시고 소금으로 빛으로 사용하셔서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둠속으로 점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일어날 때입니다. 나를 녹여서 맛을 때입니다. 나를 사용하여 빛을 밝힐 때가 것입니다. 하느님게서 이날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숙제로 주신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에 당당히 서시기 바랍니다.

죽으면 살리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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