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화해 (루가 15:1-32)

화해(Reconciliation)라는 말을 깊이 곱씹어 보고 싶습니다.

  단어를 묵상하다보면 평화라는 말이 같이 나타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화해가 없는 불행한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보다는 나와 다르다는 것으로  거절하고 잘라버리는 것을 너무나 쉽게하는 것입니다. 사람간에 계층간에 인종간에 각자의 울타리를 만들고 안에서 자기만의 소리를 내고 다른 것에는  관심같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화해보다는 싸움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싸우고 투쟁하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투어서 승리하라고 말합니다. 결과는  상처와 불신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화해를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도 화해를 통해서 해결하라고 성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람과 화해하는 방법으로 화목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이웃에게 죄를 지어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려면 먼저   화해의 제물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오면 하느님께서 사람의 죄와 허물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셔서, 사람은 화해를 통한 평화를 얻습니다. 하느님 목적은 세상을 향한 심판이 아닙니다. 용서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아 우리와 화해를 이루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지금까지는 사람이 하느님께 화해제물을 드렸지만 일이 반복되고 죄가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제는 하느니께서 당신의 아들을 직접 제물로 드려서 인간에게 더이상 형식적인 제물이 필요없이 하느님의 제물을 믿는 자들에게 화해할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신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화해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화해 방법을 잃어 버렸습니다. 화해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어서 실타래 처럼 얽혀있습니다. 어떻게 해결 하고 싶은데 방법을 찾을 없습니다. 혼란속에 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평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내가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원하는대로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재산을 가지고 자기가 성공해 보겠다고 스스로 생각한 아들은 받은 재산을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결국에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실패한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동정을 베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아들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많은 일군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그가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집을 생각할 때까지 그가 받은 고통은 죽음에 가까웠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회개가 나옵니다.”어서 아버지께 돌아가자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새로운 출발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아직도 있다는  생각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해보겠다고 하는 새출발은 되지 않습니다. 평생 다져온 생각과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버려야 비로서 하느님 아버지가 생각나고 보이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것만 내려놓으면 그것을 누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탕자입니다. 그것이 인정이 되어야 하느님을 찾게되는겁니다. 새로운 출발이 되는겁니다. 아직도 내가 탕자인줄을 모르고 잘하고 사는 효자인줄 착각하고 사는 인생의 변화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 주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 보낸후 항상 그자리에서서 문을 항상 열어놓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흥하던지 망하던지 상관없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사람이 주님을 떠나고 사람이 타락하고 스스로 절망합니다.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임에도 오히려 주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똑같이 자리에 계십니다. 사랑은 잘먹고 잘살고 평안할 때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통과 절망과 어려움에 빠져서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품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새롭게 출발할 있는겁니다. 소위 일탈하는 청소년들은  부모로 부터  잘못을 질타당하고 심지어 폭행을 당해서 돌아갈 곳이 없어서 그렇게 된것입니다. 그들은 돌아갈 아버지 집이 없습니다.  가고 싶어도 용서하고 사랑해 주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방황하며 사는겁니다. 우리들도 인생에 방황이 있습니다. 우리가 곳은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곳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합니다.

 

 

 

3, 화해제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았는데 갑돌이가 기념일을 잊어버려서 갑순이가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갑돌이는 장미 백송이를 들고 가니 갑순이가 화가 풀려서 화해가 되었다. 화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가는데 망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끌어안고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배플어 주었습니다. 무엇이 아버지를 감동시켰습니까? 빈손으로 망해서 거지가 되어 아들 자체입니다. 어느 부모는 돈을 가져와야 환영합니다 출세하고 공부를 잘해야만 받아들입니다. 부모의 자랑이 되어야만 자식같이 생각합니다. 이것은 참부모가 아닙니다. 자격이 없는 부모입니다. 하느님게서 원하시는 화해 제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돈이나 정성이나, 봉사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하느님께 돌아와 사는 것이 주님게서 원하시는 참된 제물입니다. 내가 온전한 하느님의 제물이 되면 제물 가운데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미사 가운데 하느님게서 원하시는 가장 소중한 봉헌물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자기를 화목제물로 바치셨다. 우리는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삶의 고백을 통해서 온전한 화해를 하느님과 이루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바쳐져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 서야 합니다. 제물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주셨습니다.그리고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바울 성인은 이어서 말합니다.”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 하십시오.” 여러분 말씀을 어떻게 들으십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대적해서 삽니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잘못해서 탕자같이 된것을 하느님을 원망하는한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잘못이며 내가 하느님을 떠나 인간적으로 잘못 판단하고 결정한 것으로 인하여 일어난 모든 나의 일들을 회개하고 하느님 아버지에게 돌아 간다면, 하느님은 나를 받아주시고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 주실 것을 오늘 말씀은 분명하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하느님과 화해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그것이 축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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