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답이 있는가?


성직자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다.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이 내게 묻는 말은 형식적이다. 조금은 거룩한 질문만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천국과 지옥은 있나요? 라고 묻는다 그리 진지하지 않다. 그냥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죽어보지 않았는데 어찌 알겠소? 그러면 대개는 성직자가 그것도 모르냐?고 할것이고 또는 그런 확신도 없이 어떻게 성직직을 하느냐?고 할것이다. 

그러나 정직해 보자. 누가 천국과 지옥을 가보지 않고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지금의 삶이 더 중요하다. 죽어서 갈 곳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현재의 시간을 소비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당신이 직접 우리와 같은 삶을 사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오신 것이다. 누구든 이 세상에서 천국같은 행복을 살아간다면 그는 죽어서도 천국을 살것이요. 살아서 지옥같은 인생을 살면 죽어서도 겉은 삶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누리고 사느냐가 먼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현실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답을 구하고 제시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천국 지옥 타령만 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그런 중세기적인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소위 성경중심 말씀중심 하느님중심이라고 말하는 근본주의자들처럼 문자주의에 빠져서 말씀대로만 산다고 하면서 현재 삶에 대한 질문에는 무조건 믿으라고만 한다면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대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가 우리의 삶에 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실망하고 떠나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과 문제들이 있다. 우리들 삶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그것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답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이끌고 살아갈 것인가? 

교회는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막연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관조해서 설명하는 이성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른다고 하고 함께 지혜를 구하고 진리를 연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역사는 교회 안에만 있지는 않다. 이 세상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일은 일어나고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교회안에만 가두어 두고 성서의 문자만 가지고 해석하려 든다면 창조하신 하느님의 우주적인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말씀에 답이 있다. 하느님의 진리에 답이 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 답이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근본적인 존재론을 가지고 풀어 낸다면 이 세상에 알수 없는 문제들은 없다. 하느님에게 답이 있다. 말씀에 답이 있다. 예수의 삶에서 답이 있다. 교회는 그 복음의 답을 세상에 증거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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