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를 통해 새롭게

고해성사(告解聖事) 신자가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구하는  구교회 전통의 성사이다. 성탄절이나 부활절기에 고해성사를 통해서 회개의 시간을 갖는다. 인간인 사제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고백을 하고  다시 같은 죄를 짓기는 어렵다. 요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보면서 고해성사가 생각났다. 우리 사회는 진정성있는 고해성사를 적이 없다. 그동안 국민에게 죄를 ()하고 용서받아야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무고한 민중이 희생당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일들이 우리 현대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지않은가? 온갖 부정,부패가 드러나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회피하고 결국에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 말을 한다. 죄와 불의를 보고 하느님의 정의를 외쳐야 대형교회가 불법세습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변명하는 꼴을 보면서 그들은 분명 하느님을 이용하는 거짓말쟁이가 분명하다. 참으로 하늘이 노할 일이다.

자기의 인생을 하느님 앞에서  되돌아 볼때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사람은 서로의 한계와 잘못을 알기에 긍휼의 마음으로 가능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백과 용서에는  반드시 전제가 있다. 진실한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한다.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선언이 동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

초대교회에서는 공동고백을 했다. 공동체 회중이 모인 곳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중은 사람을 용서해 주는 과정을 통해 신실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건강한 사회, 공동체, 가정은 서로의 진정성 있는 고백과 용서로 시작된다. 누구나 살다보면 잘못하고 죄짓는 일들이 생긴다. 이것을 보고 누군가는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성사(聖事)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 십자가의 의미도 그와 같은 것이다. 세상의 죄를  하느님께 대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역사나 인생이나 매듭은 풀어야 한다. 매듭을 풀지않으면 죄악은 끝나지 않는다. 매듭이 풀려야 소통의 문이 열리고 과거의 수렁으로 부터 헤어 나올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고백하고 용서하며 사는 부부이다. 자녀나 이웃이 잘못을 해도 그들이 용서를 구하면 지난 것에 대해 다시 묻지 않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지혜이다. 진정으로 고백하면 용서할줄 아는 사람이 좋은 인격자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의를 보면 반드시 행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의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스승인 공자도 염려할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을 세우고 닦는 일이 쉽지 않다. 신앙생활은 자신을 반성하고 정화하는 좋은 길이다. 자기의 죄와 허물을 덮고, 세상을 속이며 사는  사람들이 복된 인간상은 아닌것이다. 고해성사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의 허물을 스스로 벗기는 진솔한 행위이다. 우리 민족이 살고 통일의 역사가 일어나고, 분열의 역사를 끝내려면 민족적인 고해성사가 필요하다. 모두가 고해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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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사람

21세기는 감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기계적인 사람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좀더 창의적이고 세상에 감동을 줄수있는 일을 만들어 수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은 무언가로 부터 감동받고 싶어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건조해졌다. 감동받을 보다는 감정이 상할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비상식이 난무하고, 기대치는 낮아지고, 사람은 제대로된 대접을 못받고 있다. 지금 미국의 상황도 가관이다. 나라의 대통령 언론과 국민들을 상대로 장터에서 싸우듯이 언쟁과 싸움을 연일 벌이고 있다. 국민은 싫다는데 억지로 밀어 부치고 거짓말과 폭언을 공공연히 한다. 이렇게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있을까? 리더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국가의 대통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의 멧세지를 전하는 감동의 전도사여야 한다. 그래서 한마디도 신중하게 생각하며 해야 한다. 국민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이 대통령이 갖추어야 당연한 덕목인데, 많은 국민들이 느끼는 홀대와 핍박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누구도 인간을 억압하거나 지배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닮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어야할 것은 상처와 분노가 아니라 감동이어야 한다. 감동의 시작은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해주는 것이다. 사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상대에게 최선을 한다면  행복한 가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것이다. 사실 예수와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세상에 감동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천국같이 것이 분명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상처받은 것이 너무 많다.그래서 믿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감동의 시기는 전혀 없었던 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는 감동의 시간들이 분명히 있다. 다만 그것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옛말에도 감사는 물에 새기고 원망은 돌에 새긴다고 하지 않던가? 이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오히려 원망을 물에 새겨서 흘려버리고 감사를 돌에 새겨서 볼수 있다면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나는 일년에 한번은 가족여행을 한다. 이때 만큼은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아내에게 모든 선택권을 준다. 준비에서 부터 모든 것을 가족들이 원하는대로 한다. 그리고 그동안 소흘했던 가족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가족이 기억 될만한 감동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으로 우리 가족은 일년 동안의 행복에너지를 충전한다. 돈으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가족애를 가지고 하는 여행이기에 그만큼 효과가 크다.  감동의 삶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헌신과 배려와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는 감동이 될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번의 인생을 공평하게 선물로 받았다. 귀한 삶을 통해서 어떤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할 것인지는 주인공인 우리들이 만들어 가야 것이다. 감동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것을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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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성인 프란시스의 교훈


104일은   프란시스 기념일이다. 실제로 프란시스는 ,구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예수의 삶을 가장 가깝게 사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1182년에 이태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부모에게서 성장했지만 가난한 세상을 만나고 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스스로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가난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세속적인 욕심만 추구하는 세상을 향해, 이것은 아니라고 거부하고, 용기와 실천을 몸으로 살았던 분이 프란시스다. 나는 그의 삶과 정신에 공감하는 프란시스칸이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고 서로를 격려하는 공동체를 하고 있다.

 21세기의  화두는 빈부의 문제이다. 사람을 만나면 하는말은 경제와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가장 환영받는 선물은 현금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돈없이 살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것이 돈으로 평가된다. 물질의 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그를 기인이라고 할것이다.  이런 세상을 향해서 프란시스는가난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상과 그의 부모는 그를 미쳤다고 했다.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서 어느정도의 결핍을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시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같지만,  그의 정신에 공감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세상을 살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한국 노숙자보호센터에서 상담을 할때였다. 이들을 3개월안에 사회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노숙자로 평생 머물수도 있다고 한다. 가진것 없이 살아보니 오히려 그것이 편안해서 복잡한 경쟁사회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이들이 불쌍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수는 노숙자였다. 집도 잠잘곳도 없었고 가진것도 없다고 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고,  심지어 추종자들에게는 가진것을 포기하고 따르라고 했다.  이것이 예수의 실천적 삶이었다. 그런 예수에게  요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부자가 되고 성공시켜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기도를 예수께서 얼마나 들어줄수 있을지 궁금한 일이다. 프란시스는 예수처럼 가난을  살았다. 세상은 그를 탁발수도사라고 불렀다. 세상이 베풀어 주는대로 모든것을 은혜로 여기며 살았다.  이런 프란시스를 사람들이 성인으로 추대해서 부러워하고, 기념 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주위를 보면, 어려운 사람은 백불을 걱정한다. 그러나 부자는 만불을 걱정하며 산다. 누구의 걱정과 근심의 무게가 크겠는가?  그러니 너무 큰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것을 누리기 위한 근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스스로  단순한 삶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족한대로 기쁨을 누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삶을 산다. 인생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국은 지나치게 소비를 조장하는 물질만능사회이다. 유혹에 빠지면 평생 돈만 바라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살수도 있다. 욕심을 부리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 했으니  소박하고 조금은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지혜일 것이다.  가정과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돈으로는 살수 없다. 깊은 가을을 맞이하여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위해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마음 깊이 담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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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앙의 3가지 특징


첫째,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Bible, Holy Scripture)를 존중합니다. 신약과 구약 66권이 신앙의 경전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이성(reason)을 존중합니다. 이성은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게 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일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돕습니다. 


셋째,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tradition)을 존중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동서교회(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리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공의회의 결정들과 전통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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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다섯가지 선교 비전 



    1.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To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2. 새로운 신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주님의 지체로 자라게 합니다. 

    To teach, baptize and nurture new believers


    3.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To respond to human need by loving service


    4. 불의한 사회의 변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모든 종류의 폭력을 반대하고 맞서며, 세상의 평화와 일치의 삶을 추구합니다. 

    To seek to transform unjust structures of society, to challenge violence of every kind and to pursue peace and reconciliation


    5. 지구의 생태계 위기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과 더불어 생명 존중의 녹색 신앙인의 삶을 실천합니다. 

    To strive to safeguard the integrity of creation and sustain and renew the life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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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의 말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복음 14:27)


주님의 평화! 메릴랜드 엘리콧시티에 소재한 성요한 한인 교회를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평화를 사는 것입니다. 한인 공동체는 주님의 평화를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입니다. 삶이 변하여 하느님의 의로움을 통해서 정의로운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성요한 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전통과 예전을 통해서 매 주일 성찬례(미사, 예배)를 드리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하는 평화 공동체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와 언어가 어울려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평화의 그리스도 공동체에 초대합니다. 


Welcome to St.Johns Episcopal Church!




 성요한 교회 소개


                             


성요한 교회(St.John's Episcopal Church)는 1822년 엘리콧시티에 설립된 교회로, 미국 성공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운영하여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선교, 해외선교(아프리카, 하이티)와 함께 이민자와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 사역을 합니다. 


미국 교회이지만 지역의 한인 선교를 위해 한인 성직자(이완홍 신부)가 한인 공동체를 돌보고 있습니다. 성요한 교회 강당(Auditorium)에서 매 주일 성서 교육과 성찬 예배를 한국어로 진행합니다. 또한 지역 한인공동체를 위해서 교회를 개방하고 한인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차세대 한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참여하는 데 발판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로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섬기는 이


이완홍 신부 (the Rev. Barnabas Lee)

blee@stjohnsec.org, (410) 818-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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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일시장소

본당 영어예배

주일 오전 7시 30분

본당 (Historic Church)

본당 영어예배

열린 가족예배

주일 오전 9시 

본당

All Saint's Hall 

영어 주일학교

청소년 모임

주일 오전 10시 15분


본당 영어예배

주일 오전 11시 30분

본당

한인 성경모임

주일 오전 10시 30분

203호

한인 성찬예배

주일 오전 11시 30분

강당 (All Sain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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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이완홍 신부 (Rev. Wanhong Barnabas Lee)

(410) 818-8213

blee@stjohnsec.org


오시는 길

St. John's Episcopal Church

9120 Frederick Rd.

Ellicott City, MD 21042

http://www.stjohnse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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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예식의 아름다운 조화

성공회가 종교개혁 이후 400여년 동안 유지해왔던 자랑스러운 유산중 하나는 아름답고 위엄있는 예배였습니다. 


이 예배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여 가톨릭 및 성공회 예식에 경험이 없는 새신자나 개신교 성도들은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성공회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말씀과 예식의 아름다운 조화를 높게 평가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예식과 개신교의 말씀 위주의 방식은 말씀과 전통에서 오는 깊은 영성중 한 부분을 망각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습니다.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예배)는 오랜 전통속에서 다듬어져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예배로 초대합니다. 동시에 말씀의 전례를 통해 성서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올바른 삶으로의 방향을 나누어 줍니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나눔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교단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회가 예전(예배와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신앙을 우리 몸에 배게 해서 몸으로 “살아가는” 신앙 생활의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 탓에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개념을 아주 폭넓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신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하시는 모든 곳이라는 신념과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 안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절급한 분들이라고 보고 이 분들을 위한 선교와 도움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왔습니다.


특별히 성공회는 이러한 신앙의 생활화 안에서, “자기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에 보살핌의 손길을 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도 귀감이 될만 한 것이거니와, 성공회도 다른 종교의 이러한 훌륭한 신앙적 실천에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까지도 신앙의 영역에 넣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도 매우 적극적인 교단입니다.


아울러,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놓여 있는 갈라진 틈을 잇는 다리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이른바 교회 일치 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성공회는 이런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나아가 분열된 사회의 치유를 위해서 힘쓰는 것을 교회의 사명이요 소명이라고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제와 일반 신도의 수평적인 관계

성공회의 평신도는 성직자와 함께 교회 운영의 주체로 참여합니다. 단지 교회 운영뿐만 아니라 교구와 관구 대의원으로 뽑히면 주교와 사제단과 함께 교회법을 제정할 수 있고 교회의 제정과 정책을 수립하는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것이 성공회의 자랑인 의회제도이며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이 제도는 성직자의 지도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같은 제자이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근 일부 교회에서 믿음을 성직자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시키거나, 교회의 권력이 성직자 1인에게 집중되어 발생하는 폐단이 없습니다. 또한 성직자는 정기적으로 이동하여 교인을 사고 팔거나, 교회세습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직자만으로, 평신도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주종 또는 위아래의 관계가 아니라 한분 목자를 모시고 서로 힘을 합쳐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펼쳐나가는 동역자의 관계, 서로 섬기는 관계임을 초대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성공회의 노력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는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외형적인 차 이일 뿐,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교파는 한 형제요, 한 자매로서 각기 교파 나름대로 그 교파만이 갖는 독특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장점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장점을 보고 교파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공회도 초대교회부터, 오늘에 이르는 사도적 전통과, 16세기 이래로 개혁교회로서 쌓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공회 신앙의 기준이 되는 교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1888년 전세계 성공회 주교들이 모인 람베 스 회의에서는 성공회 신앙의 기준을 다음 4개 조항으로 정리했습니다.


1. 구약과 신약 66권을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2.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3. 세례와 성찬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로 받아들인다.

4. 교회의 직제로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성직을 받아들인다.


성공회는 어떤 교파라도 이상의 4개 조항을 믿는다면 형제교회로 상호 일치와 협력의 관계를 이루려 합니다. 



출처: 대한성공회 포털 http://www.holyroad.kr/ecommunity/cn_intro/intro_about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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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이요, 거룩하고(聖), 공번되고( 公),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 성공회, 앵글리컨 처치(Anglican Church)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Episcaopal Church) 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전세계로 확대되었으며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교회를 일컫고 있습니다. 세계 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 통치 체제를 갖지 않으며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적어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는 일부지역은 켄터베리관구로 포함됩니다.


성공회는 세계 160여개국에 약 7000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8개 관구와 500여개의 교구가 서로 일치를 이루며 유기적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공회(聖公會)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부패해가며 "왕중의 왕"으로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자 루터, 위클리프, 칼빈 등 종교 개혁가들은 부패한 로마 교황에 대항해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교회체제를 부정하고 "오직 성서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개혁을 시작 했습니다. 

이즈음 영국에서도 교황이 부과하는 과중한 세금과 지나친 간섭, 성직자들의 권위가 신비에의 지나친 의존 등으로 인한 신앙의 정체등을 타파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기운이 일어나며 로마 교황과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의 희생속에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헨리8세의 이야기도 로마로부터 영국이 독립하기 위한 계기였고 새로운 교회가 태동되는 복잡한 과정 중의 일부 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신앙 선조들의 사려깊은 고민 끝에 16세기에 이르러서 지금의 성공회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성공회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서 영국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의 특정적인 모습들이 교회의 요소들로 자리잡게 외었습니다


당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로마카톨릭의 요소가 배제되고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전통, 높은 도독적 품성을 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였고

전통과 기본적인 권위(교회질서)마저 무시하는 개신교적 요소도 배제되었습니다 . 또한 방언만 있고 예언은 없는 교회의 모습도 배제되었습니다.


사도시대로 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질서(주교제를 비롯한 삼품성직)와 교부들의 신앙고백의 전통을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예전을 보다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그리고 성직자와 회중이 함께하는 예전으로 개혁했습니다.


개신교 종교 개혁가들이 주장한 성서, 은총, 말씀의 요소들을 수용해서 예전 중에 성서를 가장 많이 읽는 교회가 되었고 말씀과 성예전이 조화를 이루는 예전을 이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카톨릭적인 요소와 개신교적 요소의 장점들이 민족주의적 요소와 결합된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합리적이고 거룩한 교회를 이룩한 성공회는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일치의 모델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출처: 대한성공회 포털 http://www.holyroad.kr/ecommunity/cn_intro/intro_about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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