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며 산다는 것


자공이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일생을 두고 가장 중요하게 행해야 할 것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일까요?공자는 “그것은 서()”라고 답을 했다.

‘용서할 서()’ 자, 글자를 풀어 보면 ‘같을 여()’ 자에 ‘마음 심()’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한테 안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는 말씀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 

 매주일 열린예배를 드린다. 젊은 미국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한다. 많은 아이들이 모이기에 자칫 소란스러워져서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할 있을 같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교시간에도 아이들은 앞에 나와  조용히 듣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얼마나 다루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몸으로 가르친다. 자녀와 내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는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자녀가 귀한 시대이다.그만큼 아이들이 소중하다. 그렇다고 남에게 자식을 나처럼 달라는 것은 무리이다. 엄마가 묻는다.” 사람들이 아이를 예뻐하지 않지요?” 딱한 일이다. 타인을 방해하고 무례해도 아이 부모는 무조건  관대하다. 그래서 아이가 사랑받도록 먼저 예의를 가르치세요라고 권고해 주었다. 남들은 괴롭다. 앞에서는 웃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현실을 부모가 전혀 모른다. 아이 보다도 부모가 문제이다. 어른은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분별을 배울수 없다.   자녀라도 무엇을 잘못하고 남에게 불편을 주는지 알게 하는것이 현명한 어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을 배려하라는 말에 인색한것 같다. 혼란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온 탓일까?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어떻게든 이기고 보자는 독자 생존력만 배우고 가르치는 같다. 고등학교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너희들 공부 안하면 저런  사람처럼 낙오자가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배려를 교육현장에서도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다. “나만 편하고 잘되면 되지 남들은 상관없다.”라는 생각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이웃은 나의 거울이다.  살면서 남을 위한 배려를 귀하게 여기고 칭찬해 주는 일들을 주위에서 본다. 수년전 켄터키 시골의 여학생이 불편하게 혼자사는 할머니의  차를 수년동안 세차를 해주고 돌보아준 때문에 예일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보상을 바라고 일이 아니었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사회가 인정 해준 것이다. 자녀들에게 배려와 봉사를 가르치고 더불어 살기를 교육하기 보다는 성적위주의 교육에만 올인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교육에 희망이 없어서 이민을 왔다는 말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먼저 어른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돕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녀들도 이것을 배우며 성장하게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것이 배려이다. 내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한법이다.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면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닐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먼저 가정에서부터 배려를 가르치고 실천하자. 그러면 세상은 좀더 평안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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