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성인 프란시스의 교훈


104일은   프란시스 기념일이다. 실제로 프란시스는 ,구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예수의 삶을 가장 가깝게 사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1182년에 이태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부모에게서 성장했지만 가난한 세상을 만나고 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스스로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가난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세속적인 욕심만 추구하는 세상을 향해, 이것은 아니라고 거부하고, 용기와 실천을 몸으로 살았던 분이 프란시스다. 나는 그의 삶과 정신에 공감하는 프란시스칸이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고 서로를 격려하는 공동체를 하고 있다.

 21세기의  화두는 빈부의 문제이다. 사람을 만나면 하는말은 경제와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가장 환영받는 선물은 현금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돈없이 살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것이 돈으로 평가된다. 물질의 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그를 기인이라고 할것이다.  이런 세상을 향해서 프란시스는가난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상과 그의 부모는 그를 미쳤다고 했다.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서 어느정도의 결핍을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시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같지만,  그의 정신에 공감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세상을 살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한국 노숙자보호센터에서 상담을 할때였다. 이들을 3개월안에 사회에 복귀시키지 않으면  노숙자로 평생 머물수도 있다고 한다. 가진것 없이 살아보니 오히려 그것이 편안해서 복잡한 경쟁사회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이들이 불쌍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수는 노숙자였다. 집도 잠잘곳도 없었고 가진것도 없다고 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고,  심지어 추종자들에게는 가진것을 포기하고 따르라고 했다.  이것이 예수의 실천적 삶이었다. 그런 예수에게  요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부자가 되고 성공시켜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기도를 예수께서 얼마나 들어줄수 있을지 궁금한 일이다. 프란시스는 예수처럼 가난을  살았다. 세상은 그를 탁발수도사라고 불렀다. 세상이 베풀어 주는대로 모든것을 은혜로 여기며 살았다.  이런 프란시스를 사람들이 성인으로 추대해서 부러워하고, 기념 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주위를 보면, 어려운 사람은 백불을 걱정한다. 그러나 부자는 만불을 걱정하며 산다. 누구의 걱정과 근심의 무게가 크겠는가?  그러니 너무 큰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것을 누리기 위한 근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스스로  단순한 삶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족한대로 기쁨을 누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삶을 산다. 인생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국은 지나치게 소비를 조장하는 물질만능사회이다. 유혹에 빠지면 평생 돈만 바라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살수도 있다. 욕심을 부리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 했으니  소박하고 조금은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지혜일 것이다.  가정과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돈으로는 살수 없다. 깊은 가을을 맞이하여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위해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마음 깊이 담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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