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어라 (빌립보2:10-18)

 

“처음 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들이 처음 주님과 만남, 처음 가졌던 순수함, 처음 경험한 감동 등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크리스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은혜공동체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구원은  최상의 가치이며 존재이유입니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온 몸을 다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을 말하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제한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정성을 다 합니다. (불교인의 정성과 봉헌은 기독교인이 못 따른다. 힌두교인들의 열정 가정마다 제단을 만들어 기도한다, 이슬람교인들의 생명을 바치는 순교 )

기독교인에게 구원에 대한 생각들이 제각기 많이 다릅니다. 한번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생명의 말씀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받은 구원의 선물을 간직하고 완성 하는데 우리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한번의 체험과 은혜를 가지고 평생 거저먹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안일함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오만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받은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나 쉽게 구원을 선언해 줍니다. 이것을 값싼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교회나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권한입니다. 그 권한을 교회가 지나치게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10)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는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나의 비천함을 이기고 새로운 존귀함으로 나를 높여 주셔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한 순간이 아니요, 그 분을 만나는 그날까지 무릎을 꿇고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래서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탕자의 아들에서 보면 처음에는 기고만장하여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떼를 쓰고 나가더니 다 망하고 빈 손으로 돌아 왔는데 그 아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다리다가 당신의 아들로 다시 받아 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신 분이 하느님입니다.

 돌아 온 아들은 일생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구원을 주신 주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항상 주님을 감동하는 마음으로 대 하십시오.

 

2,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13)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하는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없고 구원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세상에서 사는 고된 생활이 있지만 다른 한가지 하나님과 그의 구원이 약속되어 있기에 우리에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라는 것이 항상 같이 합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테반을 보십시오. 그는 돌에 맞아서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미소를 짓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과 천사들을 바라보고 죽어가지 않았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요, 구원 받은 자가 누리는 소망의 모습입니다. 인간 역사 가운데 누가 이러한 위대한 희망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까? (홍콩에서 황금부자가 갑자기 53세에 죽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서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이 소망으로 구원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것을 다 잃어도 심지어 목숨을 잃어도 구원의 소망이 있으면 죽어도 살리라.  

 

3, 기쁨으로 사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18)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도 감사하라.” 이것은 구원으로 인하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처지에서 늘 감사할 수 있습니까?  구원 받은 자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성령을 통해서 주어질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항상 그래야 합니다. 정성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내가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성령에게 맡기고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안됩니다.

정신을 차려,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함이 없습니다.(믿음 생활에 변화가 많고 변덕이 있는 사람은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 구원은 간직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런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

 

여러분 사도바울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나의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나는 나의 갈 길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라는 등의 말로서 자신이 얼마나 구원의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고 애를 썼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절절히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 은혜와 축복을 간직하기 위하여 “나는 이렇게 하였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모습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간증입니다. 간증하라고 하면 다들 복 받은 자랑만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은혜로 받은 구원을 간직하기 위한 투쟁의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수 많은 사탄의 유혹과 대적해야 합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되어 달려듭니다. 심지어 같은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을 섬긴다는 사람이 사단같이 달려듭니다. 세상의 타락된 풍조들은 우리의 영적 순결을 위협합니다.

순간순간 주의 도우심으로 싸워서 이겨내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을 지켜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깨어서 기도하고, 나의 영혼이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악을 정욕을 버리고 죄로부터 돌아서겠습니까? 그러면 내가 주의 도우심으로 그리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을 고백하고 주님앞에 온전히 내어놓는 내가 될 때 비로서 구원의 능력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를 채워나갑시다. 믿음의 사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 자리를 채워서 정말 하나님의 영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믿음 공동체의 교회를 이 땅에 세워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구원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참된 구원자들이 하여야 할 사명인줄 믿고 그 일에 우리 모두가 부름 받은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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