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생명의 빵 (요한 6:24-35)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빵으로 5천명을 먹이신 나눔의 기적일 일어난 후에 제자들과 만나서 하신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은 군중들은 직접 그들이 체험한 놀라운 기적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적의 빵을 먹었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졌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 이후로 예수님에 대한 평가가 더 현실적으로 좋와졌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왕이 되면 우리들의 먹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하는 마음들이 들었을 것입니다. 열악한 정치와 수탈의 경제상황에서 백성들의 소망은 예수에게 급속히 집중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우니 한국이나 미국이다 선거를 앞두고 찾는 지도자는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누구든지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누구든지 좋다, 그것이 늘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후회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는 전혀 다르게 일어납니다.   

여러분 신앙체험은 신비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먹었는데, 신비롭게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빵 하나를 나누어 먹었을 뿐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면 그것이 기적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잊고 살 뿐입니다.

 그런 것 없이 우리는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게서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의 빵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수도원생활 할 때 일입니다. 형제들은 매주일 모여서 생활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데 어느날 결정하기를 매주 수요일 저녁은 빵과 스프만으로 먹고 남은 돈으로 홈리스를 돕자고 했습니다. 그후 매주 수요일은 남은 빵과 스프만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수도원에서는 저녁 한끼만 제대로 먹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희생하는 저녁을 먹으며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우리 식탁에는 우리 형제들 8명 정도가 식사를 했지만 기분은 오천명이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빵을 나눔으로 오는 행복을 느껴 본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에서 이런 행복을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서에서 빵이 나오면 우리는 두가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1,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만나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2백만이라는 사람이 광야에서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의 빵을 먹고 살았습니다. 여러분 어른들이 6,25나 고난의 시기에 하는 이야기의 중심은 그때 무엇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먹을 것으로 나의 목숨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조상이 광야 40년동안 오로지 하느님이 내려주신 빵으로 기적적인 삶을 살았던 그 사실을 통하여 오늘도 하느님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먹이신 하느님, 그는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유대인이 어떤 사람들인데 무조건 믿지 않습니다.

아주 지독할 정도로 하느님을 확인해서 믿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똑 같은 빵을 먹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같은 은총을 받아 살았지만 누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고 누구는 그저 한끼의 빵으로만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십니다.”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너희를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 주신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여러분 빵을 먹으며 그것을 주신 하느님의 손길을 보시기 바랍니다.

빵 맛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식사기도를 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 밥의 주인이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나 같은 환경에서 먹고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면서도 짜증을 내면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달에 만불은 번다 그러면서 흑인을 짐승이라고 하며 산다.차에는 묵주를 걸어 놓고 다닌다)

한 이디오피아 이민자는 gas ststion에서 일하는데 늘 보면 성서를 수시로 보면서 행복한 미소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죽을 빵을 먹고 살지만, 다른 사람은 생명의 빵을 먹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입니까?

 

   

2, 오병이어의 빵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먹는 문제를 중요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배고픔을 위해서 축복을 하십니다. 광야에서 주님과 함게 빵을 나눈 사람들은 빵만 먹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경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거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려면 기적으로 빵만 만들어 먹이면 됩니다. 출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먹은 광야의 빵은 그런 빵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매일 같이 내리는 빵을 받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기적의 빵이 아니라 서로 나눔으로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직접 체험케 해 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말씀하십니다.”하느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와있다.”

이 나라를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천명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으로 입으로 확인하고 갔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원리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일 똑같이 밥을 먹고 삽니다. 그런데 그 뜻이 전혀 다를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격주로 우리 교회에서 저녁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눕니다.

저는 이날 저녁이 매우 특별합니다. 개인적으로 감동이 옵니다. 단순히 모여서 밥을 한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특별한 만찬입니다. 호텔에서 먹는 것 보다도, 큰 부풰에 가는 것 보다도 더 훌륭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와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특별한 만찬의 전통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우리들의 외롭고 힘든 이웃들이 함께 초대 되어 감동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를 사는 기쁨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이런 주님을 믿으면 살만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생명의 빵이 되어 주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걱정, 근심없는 인생으로 인도하겠습니까?

한끼를 먹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내가 고생하여 얻었다는 것 보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내게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먹으면, 그 인생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 나라의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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