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행복(마태5:1-12)

산상설교는 마태와 루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복음의 핵심이 담겨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처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참된행복에 대한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긍극적인 관심은  행복에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Mission statement입니다. 말씀을 따라사는  사람을 예수의 제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모두가 예수의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고 해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그냥 우리가 아는  가난한 사람으로 정확합니다.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행복은 누구도 채울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신기루같은 겁니다.  가난한 사람, 운명적인 일을 당해서 애통하는 사람,  주어진 불행을 어쩔수 없이 살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모든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행복해질 방법을 세상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구약에서 구체적인 약자라고 칭하는 과부, 고아 장애인, 이방인 minority 에게 주어진 운명을 행복하게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참된 행복의 가치기준을 뒤집어 버리시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온유한(착한)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행복을 모두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불행한 것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참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부자는 행복하다, 무엇이든 살수 있다, 힘있는 자는 행복하다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승리자는 행복하다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배고픈 자는 행복하다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으면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행복 조건이 되겠지요. 그런데 늪에 빠지면 빠질수록 행복하지 않은겁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돌아보세요, 수많은 증거들이 있지않습니까?  

세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굳이 하느님의 복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누리는 복을 지키는 것과 복을 채워 달라고 욕심을 부릴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따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 오는 사람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간절함을 가지고  오는겁니다. 예수의 도움이 없으면 살수 없는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오는 겁니다.  따라서 참된 행복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자가 제가 가진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입니다. 저에게 행복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자기의 것을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도  참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가난해서 하느님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맛나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마음이 가난하여 행복할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나라는 없어도 , 없어도 , 능력이 부족해도, 장애가 있어도 행복을 누릴수 있는 나라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정의로운 세상인 것이지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이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처럼 자식를 잃은 부모에게 필요한것이 있습니까? , 권력, , 자동차,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상해 줄것은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보상을 줄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약속만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실망 가운데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그들은 기도합니다. “나는 자식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고난 가운데 인간이 있는 것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약한겁니다.  여러분께 예수의 기도를  권합니다. ”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하느님의 나라를 찾습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공동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사제를 위해서 기도하세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게서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탈진하여 여행중에 로마에서 데레사 수녀님을 만났습니다.나우웬신부님은 데레사 수녀가 사람들과 대하면서 지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데레사 수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을 만날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의 고백입니다. 세상에 이런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때 데레사 수녀가 말하기를 하루에 한시간씩 묵상기도를 하십시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앞에 내려놓고 묵상 하십시오, 그때에 거리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느느겁니다. 그러면 모든 근심과 불안으로 부터 자유로울 있습니다. 마음대로 되는것은 없고 모든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일을 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러분이 하늘나라를 산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있겠어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가지지 않아도 이미 받은 사람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이 진정 행복이라면 마음을 가난하게 비우세요. 헛된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하느님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행복하게 살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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