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사명 (마가 1:29-39)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을 위한 일인지,  사람을 위한 일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잘못된 결과를 만들수 있습니다. 롯데 앞에서 소리를 높여 전도하는 사람을 봅니다. 용기에 놀라면서도 한편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합니다.  전도자의 입에서는 성경말씀을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소음으로 들립니다. 이것도 소통을 못하는 결과입니다.  불통의  문제는  남을 배려할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교회가 전도를 가르치면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하라는 말을  독선적으로 이해해서 전도를 못한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가 흥성할 때가 있었습니다.  20세기 기독교는  거칠것 없이 부흥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땅에 꽂기만 하면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고속으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시기에는 길에서 누구나 소리를 내었고 사람들은  반응하였습니다.  시대에 기독교는 오만하였습니다.  그때의 습관을 가지고  21세기에 전도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시대입니다. 사회나 개인도 다양해졌고 정보도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이제는  전도를 예의있고 품위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하느님도  대접받습니다. 앞으로는 싸구려 복음교회는 사라질겁니다.  고품질의  교회만이  복음을 전할 자격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전도에 대한 주님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는 두가지의 전도가  나타납니다.

1, 예수님의  전도입니다.

주님께서는  현장에 계셨습니다.  주님의 전도방법은 함께  하는 것으로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아프고 힘들다고 주님을 원하시면  주님은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누구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전도를 제자들도 옆에서 배웠습니다.  예수께서 떠난후  복음은  제자들에 의해서  세상에 선포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반을 생활하면서 주님의 말씀과 삶을 직접 배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되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병을 고치고 더러운  영을 쫒아내는 자리에 제자들과 함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함께 발견하고 치유의 방법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면 나가서 나와 같이 하라고 둘씩 짝을 지어 전도를 보내십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는 항상 어렵고 고통받고 힘든자들과 함게 하면서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복음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은 행위와 함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통을 교회는 간직하고 세상의 문제와 고민들로 부터  함께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느님말씀으로 복음으로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할 있는 응답인지를 진지하게  찾는 것입니다.

2, 바울로의 전도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지라도 그것이 나의 자랑이 될수 없습니다.”

사실 바울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경험이 없습니다.  그는 극적으로 예수의 영을 만나 스스로 깨어지고 변화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의  전도는 제자들의 전도와는 차이가   있겠지요. 오늘날  개신교회는 사도 바울로의 전도를  많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실 바울로의 전도로 인해서 세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바울로가 원치는 않았지만   주님같은 예언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로도 믿음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주님과 같은 삶으로  전도자의 사명을 이어갔습니다.  바울로는 복음이 자기의 자랑이 될수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하느님을 선언하는 것으로 이것은 말씀으로 변화되고  회복되어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 전도자들은 복음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님을 언급하지만 이미 안에는 자기가 주님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이   하느님의 말씀이 나의 자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주권 안에 있는 것이고 나도 아래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말을 바구면 전도는 겸손히 하는 것입니다.   

바울로는 말합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복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맞추어 나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원래 바울로는 고집이 전통적인 유대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남을 배려하고 섬길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전도자의 자세입니다. 

   하느님게서는 인간과 소통하시려고 땅으로 내려 오셨지요.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늘의 것이지만  세상속에서 누구나 나누고 가질 있는 하느님의  축복언어인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가지고  자기 잇속을 채우거나,  딴짓을 한다면  이것은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것입니다.

나눔의 운동이 성공회에서  35년전에 시작이 되었다. 초창기에  빈민촌에 들어가 그들과 사는데 일용직 노동자들과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이 시작이었다.그당시 이것은 교회 선교방법이 아니었고 교회들로 부터 비난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지금은 당당히 교회가 되어  주님들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었다. 주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당신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자라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하셨던  전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생명이라도 구원할 있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서 그들과 같이 하겠다는 바울로의 전도방법과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성공회는 21세기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21세기 사회의  많은 문제와 이슈를   교회에 담아서 이야기를 하고 실험하는 열린교회입니다.  서로가 다른 생각과 문화와 언어 들이 있어도 그것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정신이 있어서 누구도 누구를 심판하 않습니다. 안에서 저는  무언가를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나 바울로 사도의 공통점은 2000년전 옛날에  21세기 살고 있는 교회나 사람들도  뛰어 넘지 못하는  장벽을  두려움 없이 허물고 의연히 전도하는 모습을  다시 조명해야  것입니다.  주님게서 하셨는데 우리가 못하겠습니까?  

여러분 전도는 사랑으로 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행위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에게 향기가 되어 실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치유가 되고, 분쟁과 미움이 있는 곳에 평화와 화해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능력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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