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감사로 준비하라(마르코13:1-8)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드리는 주일입니다. 1년 동안 나의 삶을 돌아보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때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때마다 손을 잡아주시고 일으켜주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디슨이 메릴랜드 출생이다. 그의 말 가운데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성공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는 큰 오해가 있었다.

1%의 하느님의 도우심이 사실은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다.”

 복음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과거부터 이스라엘에는 종말에 대한 사상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것이 없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이 같은 믿음은 그들이 겪은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나옵니다. 여러번 나라를 잃고 수많은 세월을 살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이끄심을 경험하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묵시문학이라는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다니엘서가 대표적이고, 신약의 요한계시록이 있는데 오늘 복음마르코 13장은 소묵시록이라고 해서 중요한 묵시복음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심판이 있고,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이라는 멧세지가 신앙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신앙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도 예루살렘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언자 마호멧이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의 성전은 흔적도 없고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유적인 통곡의 벽에 서서 기도를 드리며 예루살렘 성전의 부활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의외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우산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서로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나오면서 제자가 감탄하며 이 성전이 영원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성전의 돌들이 하나도 제자리에 없을 것이며 흔적도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아니 그 당시에 보면 반역죄에 걸릴 위험한 예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예언은 주후 70년경 유다전쟁으로 성전이 피괴됨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앙과 역사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매우 두려운 현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은 지금도 매일 벌어집니다. 즉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우리가 믿는 중심 축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9.11 테러가 일어나던 2001 8월말에 저는 그 무역센터 빌딩을 올라가서 미국의 힘과 능력을 실감하면서 빌딩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빌딩은 역사 속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이 건물이 무너지리라는 생각은 단 0.1%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후 보름이 지나 한국에서 저는 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시에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무서운 재앙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멸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거대한 빌딩은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그 때를 지나 새로운 역사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말의 역사입니다.

수없이 무너집니다. 영원할 것 같은 모든 환경들이 결국은 무너집니다. 결국 여러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재앙으로나 전쟁으로나 항상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러한 일들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만 머무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좌절하지 않고 감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에게는 온갖 일들이 벌어집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감당해야 살수 있습니다. 성 바울로는 사역을 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말합니다.”내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나는 감사합니다.주께서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셔서 당신을 섬기는 직분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비록 나에게는 어려움이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기에 감사합니다. 고난은 오히려 나에게 능력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절망과 좌절을 하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넘어선 승리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바울로 성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함과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물질적으로도 곤핍하였습니다. 심지어 죽을 일도 여러번 당하였습니다. 그리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세상의 고난이나 어려움들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주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만남은 불안하고, 고통을 주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해서 절망을 안겨 줍니다. 그런데 어떤 만남은 같은 상황에서도 기쁨을 줍니다. 희망을 줍니다. 어려움을 이길 능력을 줍니다. 사람을 만나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 주님을 만나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즉 종말적인 세상을 넘어 새하늘과 새땅을 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버지니아의 윌리엄스타운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오늘날 이민자처럼 사회에 대한 실망을 안고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때도 그들은 성공회사제를 모시고 와서 먼저 성당을 마을 가운데 세우고 정착을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두려운 미지의 세계를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살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미지의 땅에 온 그들은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처음 설교에서 우리는 광야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광야에는 우리가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의 지식이나, 능력이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하느님만 의지하여 살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종말을 사는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깨달을 자리에 부름받은 선택된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실패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성인 바우로가 가르치신 대로 항상 감사하십시오.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고생할 몸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고민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때로는 다투며, 고생을 나누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홈 리스에게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시고 감사의 끈을 놓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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