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 자의 역할(1:6-8,19-28)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느님에게서 낳다.”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에게서 나았지만 그의 인생은 하느님의 빛으로 살았습니다.우리는 빛을 보고 하느님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의 사람은 빛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초기 수도원의 창시자인 안토니오는 251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하게 태어났지만 34세가 되어 주일 설교를 듣던 가진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성경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게됩니다.그리고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유산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찾으며 살았습니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사막으로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는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게 되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그는 세례요한과 같은 삶을 그대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고 복음의 빛을 증거하는데 나머지 생을 다하였습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변화된 생활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보여줍니다.이것은 당시에도 사람들에게는 신비하게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신비의 빛을 받아 사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운데는 기적이 있고 놀라운 일들이 순간 순간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자들 가운데는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시 나도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저렇게 되지나 않을까? 그러면 나의 인생은 매우 힘들것이다 라는 상상으로 미리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혹시 자기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릇의 모양이 다르고 쓰임새가 다르듯이 주님의 부르심이 있다고해서 모두가 세례요한이나 안토니오 성인같이 사는 것은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일상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수도자들이 그와 같은 생활을 지금도 배우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모습들은 세레자 요한으로 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품으면 이렇게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좀더 세상적으로 고상하게 살면서 하느님을 따를 수는 없을까? 하느님게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살게 하신것에는 차별이 없습니다.그러나 사명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두가 예언자가 될수 없고 모두가 수도자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고 서로에게 연관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게 사는 것이 요한이 말하는 빛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도 빛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두움이 함께 있기에 온전한 하느님의 빛을 드러낼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빛이라고 빛을 우리가 보고 살아야 한다고 증언하는 일은 있습니다. 정도를 하기 위해서도 왠만큼의 영적인 힘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만큼의 일을 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교회가 2차대전때 폭격을 맞고 크게 훼손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예수상은 손만 떨어져 나간채 보존되었다. 교회 신자들은 조각상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이전보다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다. 어느날 조각가가 손이 떨어져 나간 예수상을 보수하자고 건의 하였는데 교인들이 반대하였다. “우리는 없어진 손을 다시 만들지 않겠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바로 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교회는 예수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일입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비쳐지는 스포트 라이트를 거부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묻습니다.당신은 그리스도입니까? 당신은 예언자 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에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여러분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했을때 , 자기를 설명할 있을까요? 이것이 영적인 능력입니다. 영적인 능력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가르치고, 변화시키고,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참된 능력은 자기의 존재 가치를 분명하게 고백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자기가 살면서 행해야 일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빛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자기의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공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인 프란시스는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자기가 하느님의 평화로 부름받은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대림절기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땅에서 나는 주님의 사람으로 그와 더불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일의 크기는 상관이 없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을 증언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가치있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들 모두가 이것을 발견하여 우리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빛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빛을 활용해서 사람들은 많은 변화의 일들을 만들어 있습니다.그리스도는 빛으로 살아계십니다.우리는 그기스도를 통해서 무언가를 변화되도록 부름받은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알아서 살아갈때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기대하십시오, 2015년에는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를 기대하십시오. 변화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게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비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느님게서 이루시는 일은 놀라운 일상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비에 여러분의 일상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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