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루가23:35-43)

오늘은 추수감사 절기 맞이하여  한해의 감사를  찾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리스도의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 부터는  대림절로 들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준비를 시작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사십니까?  맞이하는 예수님은 나에게  무슨 기대를 채워주실 것인가? 지금 시대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필요한 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선택입니다. {순간의 선택은 십년을 좌우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일생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바뀔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사셨습니까? 그리고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했으면 그것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어떤 분이 내쉬빌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결정이 어려운거예요. 불안하게  결정을 놓고 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사실 모든 것이 불활실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돌아보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했어요.)   우리는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주님이 나의  영적 인도자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나의 왕이십니다. 예수의 말씀이  나에게  가장 소중합니다.   분의 말씀이 나의 삶을  인도합니다. 그렇게 결정하셨으면 최선을 다하십시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없습니다. 아니 없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생의 삶이 그리스도 주님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움직여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믿음에 대해서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확신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근본적인 선택이 흔들리면 인생이 불안해지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도우심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는 인생은 불안합니다. 나아가서 불행합니다. 그리서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 살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은혜를  알지를 못합니다. 가운데 감사가 없어요. 불평합니다. 있어도 불평 없어도 불평, 이것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있는 마음은 내가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고난고 어려움을 이기고 감사하게 사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닙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느님이 함께 하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대면하는 일은  소중한 일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소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유럽은 기독교국가가 아닙니다. 예를들어 과거의 기독교의 부흥국가들이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이 인구의  3% 넘지못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에 빠져서 영적인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음으로 오는 혼돈의 상태를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400년을  하느님을 잃고 살아온 유대인들이 광야에 나타난 세례요한의 회개의 음성을 듣고  마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밑바닥에서 절망과 고통을 뼈저리게 살던 백성들이 영적으로 , 삶에서 회개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고 그의 말씀이 복음이 된것입니다. 주님이 살아있던 그때까지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십자가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신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분이 세상의 왕이셨구나. 그후 복음이 세상에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삼아 사는 사람에게는 두가지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1, 감사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감사입니다. 골로사이서 1:12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면 불만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채워집니다. 왜냐하면 살아보니 지금 내가 사는 것이 모두가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것을 많이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75세라는 늙은 나이에도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을 하는겁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는 겁니다. 이것이 빨리 깨달아 질수록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사실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2, 용서입니다.

주님의 가장 파워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우리는 은혜 때문에 주님을 나의 왕으로 삼는겁니다. 그분이 나를 질책하고 심판하고, 판단한다면 힘들어서 그분과 함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은 우리를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나를 죽이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서 주남은 저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느님께 간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권한입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화해할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감사를 품고 사십시오, 용서와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삼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자녀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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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어라 (빌립보2:10-18)

 

“처음 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들이 처음 주님과 만남, 처음 가졌던 순수함, 처음 경험한 감동 등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크리스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은혜공동체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구원은  최상의 가치이며 존재이유입니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온 몸을 다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을 말하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제한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정성을 다 합니다. (불교인의 정성과 봉헌은 기독교인이 못 따른다. 힌두교인들의 열정 가정마다 제단을 만들어 기도한다, 이슬람교인들의 생명을 바치는 순교 )

기독교인에게 구원에 대한 생각들이 제각기 많이 다릅니다. 한번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생명의 말씀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받은 구원의 선물을 간직하고 완성 하는데 우리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한번의 체험과 은혜를 가지고 평생 거저먹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안일함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오만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받은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나 쉽게 구원을 선언해 줍니다. 이것을 값싼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교회나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권한입니다. 그 권한을 교회가 지나치게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10)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는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나의 비천함을 이기고 새로운 존귀함으로 나를 높여 주셔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한 순간이 아니요, 그 분을 만나는 그날까지 무릎을 꿇고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래서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탕자의 아들에서 보면 처음에는 기고만장하여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떼를 쓰고 나가더니 다 망하고 빈 손으로 돌아 왔는데 그 아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다리다가 당신의 아들로 다시 받아 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신 분이 하느님입니다.

 돌아 온 아들은 일생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구원을 주신 주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항상 주님을 감동하는 마음으로 대 하십시오.

 

2,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13)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하는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없고 구원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세상에서 사는 고된 생활이 있지만 다른 한가지 하나님과 그의 구원이 약속되어 있기에 우리에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라는 것이 항상 같이 합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테반을 보십시오. 그는 돌에 맞아서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미소를 짓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과 천사들을 바라보고 죽어가지 않았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요, 구원 받은 자가 누리는 소망의 모습입니다. 인간 역사 가운데 누가 이러한 위대한 희망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까? (홍콩에서 황금부자가 갑자기 53세에 죽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서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이 소망으로 구원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것을 다 잃어도 심지어 목숨을 잃어도 구원의 소망이 있으면 죽어도 살리라.  

 

3, 기쁨으로 사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18)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도 감사하라.” 이것은 구원으로 인하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처지에서 늘 감사할 수 있습니까?  구원 받은 자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성령을 통해서 주어질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항상 그래야 합니다. 정성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내가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성령에게 맡기고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안됩니다.

정신을 차려,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함이 없습니다.(믿음 생활에 변화가 많고 변덕이 있는 사람은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 구원은 간직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런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

 

여러분 사도바울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나의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나는 나의 갈 길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라는 등의 말로서 자신이 얼마나 구원의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고 애를 썼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절절히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 은혜와 축복을 간직하기 위하여 “나는 이렇게 하였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모습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간증입니다. 간증하라고 하면 다들 복 받은 자랑만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은혜로 받은 구원을 간직하기 위한 투쟁의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수 많은 사탄의 유혹과 대적해야 합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되어 달려듭니다. 심지어 같은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을 섬긴다는 사람이 사단같이 달려듭니다. 세상의 타락된 풍조들은 우리의 영적 순결을 위협합니다.

순간순간 주의 도우심으로 싸워서 이겨내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을 지켜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깨어서 기도하고, 나의 영혼이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악을 정욕을 버리고 죄로부터 돌아서겠습니까? 그러면 내가 주의 도우심으로 그리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을 고백하고 주님앞에 온전히 내어놓는 내가 될 때 비로서 구원의 능력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를 채워나갑시다. 믿음의 사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 자리를 채워서 정말 하나님의 영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믿음 공동체의 교회를 이 땅에 세워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구원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참된 구원자들이 하여야 할 사명인줄 믿고 그 일에 우리 모두가 부름 받은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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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를 들어라(마태오3:1-12)

주님께서 여러분을 무엇하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하세요? 빛이되어라

옛날 전기불이 없이 촛불이나 호롱불을 밝히면  어둠속의 공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작은 불꽃이지만 그것이 가진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마치 환상을 사는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촛불같은 사람이 세상을 밝힐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빛으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하느님게서는 의인을 통해서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운데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암흑기에 나타난 마지막 구약예언자라고도 합니다. 그는 예수보다 6개월정도 빠른 나이니까 예수님과 같은 또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제법 유복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나갑니다.  촛불처럼 암울한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라고 세상을 향해 선포합니다. 여러분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가장먼저 해야할 것은 뒤집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게서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하느님께는 적당한 타협이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서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겁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 그래서 본래 그리스도인들은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불순한 사람으로 위정자들의 위험대상이었습니다. “ 저들은 세상을 바꾸어 하느님나라를 세우려고 하느냐?” 하는 겁니다. 결국 요한은 헤로데왕의 불의에 대항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자신을 혁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는 그자리에서 똑같은 삶을 살면서 말로만 세상이 깨끗해져야해, 바뀌어야해 라고 하는 말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자신을 먼저 회개함으로 혁명적인 삶을 고백하였습니다.  자기가 가졌던 부유함을 던져버렸습니다. 집을 떠나 광야의 척박한 삶으로 스스로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대로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모든 예언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모습입니다.   들에서 나는 것들을 먹고 입으며 생활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친환경적인 생활로 바뀐 것이지요. 세속적인 편안함을  떠나서 창조적인 생활을 한것이지요. 여기에서 하느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고 유대땅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원해요. 다만 그것을 용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표본이 되어 용기를 가지고 나오면, 나도 할수 있습니다.

 요한이 하였으니 나도 할수 있어요. 예수께서 하셨으니 나도 있어요. 프란시스성인이 하셨으니 나도 있어요.  요한은 하느님나라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두가지를 약속받습니다.

1,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라

여러분은 자신을 진실하게 고백한 경험이 있어요? 마치 목욕탕에서 처럼 자신을 빨가벗고 드러낸 경험이 있습니까? 솔직하게 나의 잘못과 허물을 말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없이 나의 변화를 기대할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 하느님나라를 맞이할 없습니다. 잘난것은 압니다. 못나고 상처난것이 드러나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것으로 거듭날수 있는거예요. 고백의 과정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가 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약속의 세례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자기 혁명의 시작입니다. 완성이 아닙니다. 이렇게  출발하는 겁니다.

어떻게해야 고백을  잘할수 있을까요? 예수 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채워져야 합니다.   하느님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면 고백을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에게 나를 보여주듯이 되는겁니다.  하느님게서 이런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말씀하시는겁니다. 나의 나약함과  허물이 있음을 부끄러워 마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누릴 있습니다.

2,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서 보여라요한은 적극적으로 회개의 삶을 강조합니다. 요한이 그렇게 사람이기에 감히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보니 이것이 정말 좋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사람들에게 강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고백합니다. 알지만 지금의 삶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변에는 모두가 그렇게 말은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삽니다. 여러분 진정한  깨달음을 가지면 그의 생활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어설프게 알면 아무것도 안합니다. 그냥 머리로만 알고 말아버리지요. 이것은 나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양다리를 걸치면 안됩니다. 세속을 살것인지, 하느님 나라를 살것인지 분명한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한국에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낭비입니다. 시간을 죽이는 일입니다. 반드시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바울로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말은 내가 하느님처럼 은혜를 산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날을 기다립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것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니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주님 안에서 깨달은 말씀대로 행동하십시오. 세속과 하느님나라에 양다리를 걸치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께 올인하십시오. 그것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는 온전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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