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는 (루가14:1-14)

주님의 말씀이 나의 발등상의 등불이 되어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소서

성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축복된 삶을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이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것에 맞는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가지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1,   먼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엇보다도  우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분이 나를 도우시고 이끄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그리스도인의 자격에 문제가 됩니다. 

3,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를  항상 인도하시는 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선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을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것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의 선언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떤 이들은  생명을 걸고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선포하는    가지를 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이러한 삶의 고백과 실천으로 부터 드러납니다.

오늘 말씀은 두가지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겸손하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센텐스입니다.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생을 전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내것으로 만들고 내가 주도하려고 합니다. 결국은 자신을 높이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동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했지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에게 자랑하기를 바라고  심지어 마음속까지 들여다 보시는 하느님께도 그런 마음으로 살으니까,  예수께서 위선자라고까지 하십니다.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은 사람들에게서  표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은  나보다 낮은 사람, 겸손한 사람을  좋와합니다. 그런 사람이 편안 합니다.  예를들어, 찰리 채플린은 어떤 사람입니까?  영구나 맹구는 어떻습니까?  이들은 진짜 바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주려고 스스로 망가지고  바보가 됩니다. 세상은 이들을 천재라고도 말합니다. 오히려 존경합니다. 같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30년을 부부가 살았는데 지금도 다투고 삽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주도권 싸움입니다.  서로 머리가 되고, 잘났다고 하니까  싸웁니다. 누가 잘나면 다른쪽은 못나야 되잖어요.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있어요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가정이나 공동체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서로 겸손함으로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모두가 주도권을 내려놓고 겸손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이라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능력도 있고 모든 것을 가지셨지만,   모든 것을   부족하고  못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것이 그분을 메시아, 그리스도 , 구세주라고 사람들이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착한행위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남을 선대하고 존중할 압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윗자리에 앉히는겁니다. 남을 존중하는 , 하느님을 존중하여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이 평화롭게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 공동체도 나를 죽이고 겸손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해서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먼저  남을 존중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입니다.

2,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주님의 관심은 항상  작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스로를 작고 보잘껏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를  불쌍하고 작은 사람으로 보거나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르고 잘못된 운명을 사는 아웃사이더로만 보일 뿐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자만에 빠질 있습니다.  하느님은 가난한사람, 스스로 보잘것  없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절대적으로  필요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존중하여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들을  선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주시고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산상복음이  복음의 핵심이 되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느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뉴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이들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가난하다는 말은  파산당했다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도  포함을  합니다.  이들에게  세상의 어려움이 얼마나 큽니까?  그들에게는 정의롭고 평등한 하느님의 나라가  너무도 간절하지요. 없고 부족하고 파산을 당하면  대부분 작아지고  겸손해 집니다.  세상은 이들을 멸시하고,   억압하고  고통을 주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하셔서  세상에서는 얻을 없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겸손한 자에게 필요한겁니다. 겸손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세속적인 욕심과  자랑이  파산됬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은혜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겁니다.  아직도  세상에서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많고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을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느님의 것을 누릴 자격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겸손을 갖추십시오.

존중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느님을 존중하고 이웃을 존중하십시오.

축복된 삷을 원하십니까?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주님의  삶을  따라 사십시오.

그안에  여러분이  찾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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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교인 Pot Lock과 전통놀이


3월10일 주일 한인예배후 한미 교우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와


윷놀이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를 함께 하며 공동체 친교를 합니


다. 


장소: All saint's hall


시간: 오후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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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행복(마태5:1-12)

산상설교는 마태와 루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복음의 핵심이 담겨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처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참된행복에 대한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긍극적인 관심은  행복에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Mission statement입니다. 말씀을 따라사는  사람을 예수의 제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모두가 예수의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고 해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그냥 우리가 아는  가난한 사람으로 정확합니다.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행복은 누구도 채울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신기루같은 겁니다.  가난한 사람, 운명적인 일을 당해서 애통하는 사람,  주어진 불행을 어쩔수 없이 살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모든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행복해질 방법을 세상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구약에서 구체적인 약자라고 칭하는 과부, 고아 장애인, 이방인 minority 에게 주어진 운명을 행복하게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참된 행복의 가치기준을 뒤집어 버리시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온유한(착한)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행복을 모두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불행한 것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참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부자는 행복하다, 무엇이든 살수 있다, 힘있는 자는 행복하다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승리자는 행복하다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배고픈 자는 행복하다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으면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행복 조건이 되겠지요. 그런데 늪에 빠지면 빠질수록 행복하지 않은겁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돌아보세요, 수많은 증거들이 있지않습니까?  

세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굳이 하느님의 복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누리는 복을 지키는 것과 복을 채워 달라고 욕심을 부릴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따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 오는 사람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간절함을 가지고  오는겁니다. 예수의 도움이 없으면 살수 없는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오는 겁니다.  따라서 참된 행복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자가 제가 가진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입니다. 저에게 행복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자기의 것을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도  참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가난해서 하느님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맛나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마음이 가난하여 행복할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나라는 없어도 , 없어도 , 능력이 부족해도, 장애가 있어도 행복을 누릴수 있는 나라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정의로운 세상인 것이지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이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처럼 자식를 잃은 부모에게 필요한것이 있습니까? , 권력, , 자동차,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상해 줄것은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보상을 줄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약속만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실망 가운데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그들은 기도합니다. “나는 자식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고난 가운데 인간이 있는 것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약한겁니다.  여러분께 예수의 기도를  권합니다. ”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하느님의 나라를 찾습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공동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사제를 위해서 기도하세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게서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탈진하여 여행중에 로마에서 데레사 수녀님을 만났습니다.나우웬신부님은 데레사 수녀가 사람들과 대하면서 지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데레사 수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을 만날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의 고백입니다. 세상에 이런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때 데레사 수녀가 말하기를 하루에 한시간씩 묵상기도를 하십시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앞에 내려놓고 묵상 하십시오, 그때에 거리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느느겁니다. 그러면 모든 근심과 불안으로 부터 자유로울 있습니다. 마음대로 되는것은 없고 모든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일을 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러분이 하늘나라를 산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있겠어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가지지 않아도 이미 받은 사람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이 진정 행복이라면 마음을 가난하게 비우세요. 헛된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하느님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행복하게 살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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