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의 마음


중용(中庸) 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나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또한 어떤 것에 대하여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중심에서 서로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정신이라고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가운데 우려되는 것은 사회가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지난번 대한민국의 촛불과 태극기 시위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을 모두가 느꼈을 터이기에 고민이 크게 다가온다.이런 극단적인 사회적 분열은 사회적으로 상처를 남긴다. 요즘 국가주의, 민족주의, 좌파, 우파라는 말을 사용해서 사람들 편을 가르고, 안에 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으로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확히 틀린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쪽에만  온전히 동의하지도 않고, 어느 한곳 속하는 것도 불편하다. 이런 극단적 현상들이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 하고 미성숙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동안 세계가 하나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세상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손을 맞잡고 글로벌한 세상을 기대하였다. 이렇게 손을 잡아야 한다.  서로 생각과 사상,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여기에 중용의 정신이 담겨 있다.중용은 평화를 이루는 정신이다. 내가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생각과 믿음이 좋다면 남의 생각과 믿음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상식을 깨면서 얻을 있는 행복과 평화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중용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있어야 한다. 모두가 손잡고 이해와 화해를 먼저 생각하고 아우르는 넓은 가슴을 준비해야 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짧은 인생을 사랑만으로 채우려해도 세월이 부족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는 어느 극단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존중하며 사는 사람이 많고, 그들은 세상의 상식과 평화를 이루는 중심된 구성원이다. 교회적으로는 16세기 영국교회 개혁시기에 신구교 싸움으로 많은 희생과 갈등을 겪으면서 교회가 화해와 평화를 찾던 , 중용의 정신을 따라, 신구교를 아우르는 중용의 신앙을 추구하는 성공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교회 전통이 되었다.    

 중용의 마음을 가지려면 스스로의 성찰과 수련이 되어야 유지할 있다. 너그러움과 용서와 이해는 중용의 정신안에서 나올수 있는 덕목이다.  신앙인으로서 생각을 해본다. 종교를 가지고 기도하며 열심으로 산다고 하면서 이웃과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하며  다툰다면,  신앙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더불어 평화를 이루어 하늘나라를 우리 안에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과 평화가 절실하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나의 것만 주장해서 분열하기 보다는 모두를 감싸 안는 중용의 정신이 확산 되기를 바란다. 안에서 평화 공동체가 이루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 프란치스코의 기도의 서두를 적어본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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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날까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요?  라는 질문을 많이 했.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지만 ,  전쟁을 입에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호전적인 막말경쟁과  정치지도자들의 수준으로 보면 국민의 안전과 삶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같아 안타깝다. 6.25전쟁을 겪은 한반도는 참혹함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고,  상처를 70년가까이 안고사는 민족이기에, 또다시 비극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남북 어느쪽에도 도움이 안되고 한반도 전체가 패망의 길로 간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있다. 가장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이 한반도 평화와 우리 민족은 안중에 없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지키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세계는 엄청난 혼돈속에 빠져있고  세계 각국들은  앞다투어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로 흐르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앞장서 일을  주도하고 있다. 결국 힘없고,  경제적 종속관계속에 살아가는 나라들은  강대국의 희생제물이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이 우리 민족과는 상관없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벌어질수도 있다는 것이  심각한문제이다. 또다시 나라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는 불행은 당하지 말아야 한다.열강들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는 자칫 세계대전의 화약고의 가능성이 있기에 위험은 더욱 심각하다.  한반도전쟁은 세계전쟁으로 이어질수 있다. 이런때 우리 민초들과 신앙인은 무엇을 것인가?

 세상의 모든 종교는 평화와 사랑을 근본으로 한다. 평화를 부인하는  종교나 영적지도자는 있을수 없다. 스스로 종교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평화와 사랑을 전제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전쟁과 분열을 막는것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 있어야 한다.  불안한 세상을 조장하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다.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결국 전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은 연약한 민중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지만 희생은 국민 몫이다. 전쟁을 결정한 당사자들은  군대를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도 많고 자녀들을  전장에 보내지도 않는다.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가? 전쟁 영웅들이  행진할 그들의 옷에는 훈장이 달려있다. 그들이 서로 죽이고 죽은 상대는 누구인가?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했을까?  전쟁은 모든 사람을 지옥으로 안내한다. 거기에는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남북 관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익이 얻어지는지 묻고싶다. 같은 민족을 죽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특히 하느님의 평화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삶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들이 귀하게 살아갈 있는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도리이다. 여기에는 사상이나 어떤 정치적 논리도 필요없다. 오직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명제앞에 모두가 순종해야 한다. 한반도금수강산에는 어떤 살상 무기나 핵이 필요치 않다.  선조로 부터 물려받은 평화의 마음만 있으면 족하다. 강대국들의  이해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다툼은 그쳐야 한다.  한반도 조국의 불안함을 정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누리려는  것들을  국민은  경계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만큼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도 입에 올리지말라. 오로지 평화만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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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대하는 태도


어마라는 허리케인이 이름만큼 어머어마한 피해를 주고 갔다. 매번 자연재해를 마주할 때마다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은 감히 자연을 상대할 존재가 아닌것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따르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다. 우리 교우들도 일찍이 플로리다로 내려가 가족과 친지들을 데리고 메릴랜드로 피난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도움이 없어서  피난을 못하고 집과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은 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 있겠는가?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재앙을 맞이하고 산다. 결국 사람이 할수 있는 일은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밖에는 없다. 이것을 피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 지금 잘산다고 안심할것이 아니다. 지금 안정되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것이 아니다. 어느 분은 미국 이민을 살면서 안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날 뜻하지 않은 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분도 있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안정된 일과 신분을 갖지 못하여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부분 힘든 과정을 겪으며 미국에 정착 하였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되었다고해서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것이다. 

성서를 보면 재앙을 하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을 대표하여  속죄제를 올리고 먼저 자신의 허물을 찾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도자가 권위의 옷을 벗고 , 땅에 무릎을 끓고 , 금식을 하면 , 국민들도 동참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을 보고 하늘이 불쌍히 여겨 도움을 준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재앙 가운데 있다면, 어찌 지도자들의 회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재앙을 겪는 국민을 보고  하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면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작은 벌레같이 움직이는 자동차만 눈에 보인다. 이것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의 실상이다. 그래서 성서에도 사람이 미물같다 라고 고백하지 않는가? 이런 작은 사람들이 재앙을 겪을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라는 물음에 대해, 사람보다 못한 동물을 보고 배우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미물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극복하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피할 없는  재앙같은 상황이 올수 있다.  20 가까이 미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고생하던 분이 도움을 청해서 병원에 갔다. 이미 말기 암으로 인하여 그는 마지막 재앙을 살고 있었다. 그런 앞에서 무슨 위로를 있을까? 다만 누구든지 이런 일을 맞을 있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재앙이든 국가의 재앙이든 모두가 슬픈일이고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없는 영역이다. 다만 재앙을 맞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와 겸손한  마음으로  존재의 교훈을 얻을 있을 뿐이다. 이웃이 힘들고 어려움에 있을때 , 기도하겠다는 말만 것이아니라, 실질적인  삶을  나누고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말씀이 재앙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보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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